2025.11.12 | 매일성경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21절)
2차 귀환자들의 여정을 잠시 살펴보면, 7:9절은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고 합니다. 1월1일에 출발해서 5월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4개월의 긴 여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1절은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라고 합니다. 1월12일에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출발은 1월1일인데, 출발을 위해 아하와 강가에 모여 3일 동안 점검하는 과정에서 레위인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람들을 보내 레위인을 모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체된 시간이 9일 정도였고 이후 12일에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입니다. 빨리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합니다. 그냥 기도해도 되는데 금식하며 기도한다는 것은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이렇게 겸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기도 제목은 21절 하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입니다. 가는 여정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을 주시길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사실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7장부터 지금까지 내용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많이 신뢰합니다. 에스라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가는 길을 보호해줄 보병과 마병을 요청하면 아닥사스다는 흔쾌히 허락할 것입니다. 당시 최강대국인 페르시아 군대와 함께 간다면 감히 누가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에스라는 왕에게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에스라는 왕에게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22절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시며, 반대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에게는 진노를 내리시는 분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니 귀환 여정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방 왕인 아닥사스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든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는 여정의 평탄한 길은 그동안 에스라가 말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능력을 선포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왕에서 보병과 마병을 요청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와 백성들의 금식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실제로 31절은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고 합니다. 귀환 여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대적들이 있었고 심지어 길에 매복해서 기다리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백성들을 도우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대적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급한 일일수록, 중요한 일일수록 먼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깁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일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세고 달아 보고”(34절)
에스라는 페르사아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모아진 예물을 가져갈 사람들 12명을 선발하여 임무를 맡깁니다. 이 예물을 잘 지키고 운반해서 그대로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라고 합니다. 26절을 보면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예물이 25절 보면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이 드린 것이며, 또한 “그 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왕과 신하들이지만 자신들의 나라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7:23절) 성심껏 드렸을 것입니다. 또한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은 돌아가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최선으로 드렸을 것입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많은 예물이 모아졌습니다. 이것을 에스라는 28절에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니 거룩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제사장들에게 예물을 맡깁니다. 많이 모아졌다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져갑니다. 드려진 목적대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가 “달아서”입니다(25,26,29,33,34). 최종적으로 34절 “모든 것을 다 세고 달아 보고 그 무게의 총량을 그 때에 기록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에스라는 모든 예물을 달아서 선발된 책임자들에게 전달하고, 이들은 그대로 옮겨서 예루살렘 제사장들에게 전달합니다. 모든 일들이 온전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가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발견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고 바르고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용하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소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귀환자들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또한 왕의 조서를 총독들에게 전달해서 조서 내용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잘 섬기도록 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금식하며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급할수록 중요한 일일수록 우리도 기도로 하나님께 맡깁시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손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감당합시다.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고 소중하고 신실하게 사용합시다.
2025.11.11 | 매일성경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1절)
본문은 율법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와 함께 2차 귀환에 오른 백성들의 명단과 숫자입니다. 소개된 가문들은 2장의 1차 귀환 가족들과 연관되어 있고, 3-14절까지 모두 12가문입니다. 이는 구약의 12지파를 상징할 수 있으며,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출애굽과 같은 의미로 여기고 있습니다.
1차 귀환과 2차 귀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숫자에 있습니다. 1차 귀환자 총수는 49,897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차 귀환자 숫자를 전부 더하면 1,773명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됩니다. 이미 1차 귀환 때 돌아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1차 귀환 후 8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만큼 페르시아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이방 땅에서의 삶에 정착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소수이지만 2차 귀환을 결심한 백성들의 결단과 헌신이 귀합니다.
이들 중 13절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이라고 되어 있는데 “나중된 자”는 “마지막으로 귀환 여행에 참가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가문은 1차 귀환 때 많은 이들이 돌아갔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이번 귀환에 모두 동참하여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모든 가문에 귀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에스라는 본격적인 귀환을 앞두고 아하와로 강가에 모여 최종 점검을 합니다. 1500km, 4개월의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가져가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견합니다. 15절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1차 귀환 때도 제사장들의 숫자는 많은데(4,289명), 그에 비해 레위인의 숫자는 적었습니다.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를 포함해서 341명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2장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는 직분입니다. 하지만 레위인들은 제사장을 도와 힘든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누가 주목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 없어서 흩어져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계를 백성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백성들이 십일조 등으로 섬겨주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과거 왕과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이 신앙이 온전하지 않았을 때 아마 가장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 레위인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다시 성전 봉사와 말씀 봉사를 하기보다 이방 땅에 머물며 자신들의 손으로 수고해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레위인들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과거 문지기로 섬기던 레위인들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시84:10절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렇습니다. 아무리 풍요로운 곳에서의 천 날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의 한 날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가 좋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영광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영광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기에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레위인들은 그런 의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18절)
어떤 이유가 되었든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귀환 공동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에스라가 앞으로 해야 할 사역이 바로 말씀으로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사역입니다. 이 일을 도와줄 사람들이 바로 레위인들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에스라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17절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가시뱌’지방으로 보냈다는 것은 이곳이 레위인들의 집단 거주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잇도는 레위인의 지도자로 보입니다. 이들에게 부탁해서 레위인들과 성전 봉사자들을 긴급하게 모집합니다.
다행히 38명의 레위인과 220명의 느디님 사람이 모집됩니다. 귀환할 예정이 아니었음에도 귀환할 레위인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귀환을 결단한 38명의 헌신이 놀랍습니다. 이들은 시편의 말씀처럼 이방 땅에서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의 수고를 기쁘게 여긴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기 느디님 사람은 과거 이스라엘의 전쟁 포로로 성전에서 물긷는 일과 장작 패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많은 숫자가 귀환 행렬에 함께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18절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에스라7-8장은 이처럼 “하나님의 손”을 강조합니다. 7:28절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에스라와 함께 하였습니다. 또한 7:9절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라고 합니다. 4개월의 긴 귀환 여정을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때론 문제를 만나고 장애물을 만나지만 하나님의 손길로 해결해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손길이 나와 항상 함께함을 기억합시다. 귀환하는 백성들처럼 우리 신앙 여정도 안주하지 않고 믿음으로 모험하며 도전하는 신앙이 됩시다. 문제를 만나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힘입어 해결해 갑시다.
2025.11.10 | 매일성경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11절)
본문은 2차 귀환 과정에서 페르사아 아닥사스다왕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내용과, 에스라에게 주어진 권한 그리고 에스라가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귀환 지도자인 에스라를 소개하면서 11절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라고 합니다. 본문은 세 번이나 “율법 학자 겸 제사장”이라고 표현합니다(11,12,21). 지금 페르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에 꼭 필요한 사람이 율법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입니다. 이때가 1차 포로귀환 후 8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후로는 57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때 예루살렘의 영적인 상황을 말라기 선지자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멸시합니다. 예배는 습관적이며 형식적이 되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말1:6-10). 그러면서도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하나님께 따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전 건축의 감동과 은혜가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무엇이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다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예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래서 율법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하나님은 보내십니다.
1차 귀환 때는 성전 건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후손인 세스바살 그리고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세워 보내셨습니다. 이제는 말씀과 예배가 필요하기에 에스라를 보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가장 필요한 사람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페르시아 왕들의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1차 귀환 때는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셨습니다(1:1). 그리고 이제는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왕이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목적이 있습니다. 14절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일곱 자문관은 왕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 그룹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에스라를 보냅니다. 정치적 이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예루살렘과 성전의 신앙회복을 위한 계기가 되도록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왕들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27절)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아닥사스다는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먼저 왕과 자문관들이 은금을 하나님께 드립니다(15절), 또한 바벨론 모든 지역에서 모은 은금을 가져가게 합니다. 이것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물입니다. 이 돈으로 제물을 사서 하나님의 성전 제단에 바치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섬기는 일을 위해 그릇을 주고, 20절은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라며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가져가도록 허락합니다. 놀라운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근처의 창고지기들에게 조서를 내려 에스라가 구하는 것은 신속하게 지급하도록 합니다. 은과 밀, 포도주와 기름이며 소금은 원하는대로 공급하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전 봉사자들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혜택도 줍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이런 명령을 내린 이유는 23절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그의 생각으로는 자칫 이스라엘 백성들의 섬기는 신인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하면 왕과 왕자들에게 진노가 임할 수 있다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6:10절에서 다리오 왕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전 건축이 신속히 진행되도록 협력하라고 하면서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즉 페르시아 왕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닌 많은 신들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 중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섬기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참 신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25-26절은 에스라에게 주어진 권한입니다. 율법을 아는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재판하고, 가르치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으면 그런 자들은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두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에스라의 권한이 막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자신의 통치 아래 있는 지역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이런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에스라의 찬양이 본문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많은 은총을 베푸는 왕이 아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7절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두셨습니다. 감동하십니다. 그래서 에스라로 하여금 왕과 권세있는 자들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습니다. 28절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하나님 손이 에스라와 함께 합니다. 힘을 얻어 귀환을 준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손이 우리 위에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형통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힘을 얻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합시다.
2025.11.07 | 매일성경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2절)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합법성을 묻는 총독 닷드내의 편지가 다리오 왕에게 도착합니다. 왕은 명령을 내려 문서창고를 조사하게 하였는데 한 두루마리를 찾아냅니다. 발견 장소가 메대도 악메다 궁성입니다. 당시 왕들은 여러 왕궁에서 계절마다 돌아가며 머물렀는데 악메다 왕궁은 여름 별장입니다.
발견한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성전에 관한 내용에는 1장에 기록된 것에 더 추가된 내용들이 있습니다. 고레스 원년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는데, 두루마리에는 성전의 규모와 건축 방식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3절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입니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큰 규모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높이가 30규빗, 길이가 60규빗, 너비가 20규빗입니다. 한 규빗을 50cm로 한다면 높이는 15m, 길이는 30m, 너비는 10m입니다. 그런데 새로 지어질 성전은 높이가 30m이고 너비도 30m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어진 스룹바벨 성전의 규모는 솔로몬 성전에 비해 작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고레스 왕이 보통 신전의 규모를 따라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건축 방식은 4절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고 합니다. 새번역은 “벽은 돌 세 겹에 나무 한 겹씩 쌓아라”로 되어 있습니다. 두루마리에는 성전을 짓는 경비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4절 하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고 합니다. 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갈 때 그곳에 거주하는 사면 사람들이 물품과 예물을 공급하라고 되어 있는데, 두루마리 내용에는 건축 비용을 왕실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장에 기록된 것처럼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온 성전 기물을 돌려주어 제자리에 있도록 명령한 것까지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총독은 건축을 멈추게 할 생각으로 사실 확인을 위한 편지를 보냈는데, 결과는 반대로 더 확실한 성전 건축의 근거와 멈추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함을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걱정스런 문제였는데 오히려 문제가 하나님의 일이 더 온전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8절)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다리오 왕은 총독 닷드내에게 답신을 보냅니다. 핵심은 성전 건축을 방해하지 말고 도우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6절 하 “그 곳을 멀리하여”, 7절 “공사를 막지 말고 …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멀리 떨어져 공사 방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명령은 8절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나라에 바치는 세금 중 일부를 성전을 건축하는데 끊임없이 제공해서 공사가 멈추지 않게 하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9절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라고 하며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필요한 제물을 날마다 공급하라고 명령합니다.
만약에 이런 왕의 명령을 임의로 변조해서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도 죽게 될 것이고 그 집도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왕이나 백성들이 이 명령을 지키지 않아 성전을 파괴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기를 원한다라고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대한 페르시아 왕의 명령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이 왜 이런 긍정적인 명령을 내렸는지 이유가 10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페르시아 왕인 자신과 왕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라의 안정과 번성을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다리오 왕은 다른 나라에도 이런 명령을 내렸을 수 있습니다. 그 나라 신을 섬기는 신전을 짓게하고 동일한 기도제목을 주었을 것입니다. 즉 다리오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닌 많은 신을 섬기는 다신론자입니다. 우상숭배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리오를 사용하십니다. 1장에서 고레스를 감동하신 것처럼 6장에서는 다리오를 감동하십니다.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이방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건축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우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대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환경을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문제를 통해서 더 온전케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믿음의 삶이 됩시다.
2025.11.06 | 매일성경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1절)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공사가 15년 동안 멈췄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BC 538년에 귀환해서 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가진 후 BC 53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공사가 중단되었고 오늘 본문에서 공사가 다시 시작된 때가 BC 520년입니다. 그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 목적을 점점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는데 서서히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자신들의 집을 건축하고 삶의 안정을 위해 살아갑니다.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일으켜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학개1:1-9절을 보면 당시 상황이 잘 나와 있습니다. 2절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핑계하며 합리화합니다. 그러자 학개 선지자는 팩트폭격을 합니다. 4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성전은 무너져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꾸민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으로보면 좋은 집에 행복한 삶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무기력과 영적 피폐함이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을 6절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풍성해 보이지만 풍성하지 않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선지자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8절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멈추었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우리에게 가장 복된 삶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슥4:6절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은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의 책임을 맡은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반드시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이런 선지자들의 도전과 격려에 힘입어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다시 성전을 건축합니다. 백성들도 동참합니다. 이 일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도왔다고 합니다.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말씀으로 격려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이 시작되고, 쉽지 않은 과정이 계속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백성들이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씀으로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저 앉아있던 지도자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성전에 무관심하거나 혹 관심은 있어도 머뭇거리던 백성들을 도전하게 하였습니다. 시작하게 했습니다. 또한 여전히 장애물이 있지만 극복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붙잡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11절)
그런데 성전 공사가 시작되자 그 지역을 관리하는 총독 닷드내와 관리들이 이 사실을 알고 공사를 멈추게 하려 합니다. 누구의 명령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연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인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당시 바벨론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니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일도 반란을 모의하는 일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조치를 취합니다. 그런데 5절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십니다. 대적들로 인해 중단되었던 공사가 어렵게 시작되었는데 다시 중단된다면 아마 완공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므로 중단되지 않고, 대신 왕에게 편지를 보내 성전 건축이 합법적인 것인지 묻습니다.
7-17절까지가 총독이 왕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이 내용 중 총독의 질문에 대한 장로들의 대답이 나옵니다. 11-12절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자신들이 누군인지를 밝힙니다. “천지의 하나님 종”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지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총독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회복을 위해 일하고 계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들이 포로 된 이유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들을 사랑하며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이제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어 고국으로 돌아온 과정을 설명합니다. 페르시아 초대왕인 고레스가 명령하였습니다.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 빼앗겼던 성전 기물도 주어서 함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총독은 이런 내용을 편지에 담아서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해서 보내달라고 합니다.
혹 우리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리고 인생의 장애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서 맡기신 목적과 사명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며, 다시 일어나 회복하고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2025.11.05 | 매일성경
●“유다 사람들이 …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12절)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하자 대적들이 방해합니다. 이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저자는 후대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일, 즉 느헤미야가 성벽을 수축할 때 있었던 일을 여기에 기록하므로 성전을 지을 당시도 대적들의 방해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대적들이 왕에게 보편 편지 내용과 왕의 답신입니다. 대적들은 먼저 예루살렘을 12절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라고 하면서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패역”과 “반역”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12,15,19). 이들도 예루살렘과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평을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땅에 대한 균형잡힌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편향되고 부정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어버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거짓을 더해 고발합니다. 13절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거부하고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적들에게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이용해서라도 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왕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압니다. 바로 ‘손해’입니다. 그것을 자극합니다. 16절 하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라고 하면서 이 일을 그대로 놓아두면 결국 제국의 영토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악한 의도를 숨기고 왕을 위해 이런 상소문을 올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14절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새번역은 “나라에서 녹을 타먹는 우리로서, 임금님께 불명예스러운 일이 미칠 일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이 패역한 성읍이요 반역하는 일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일부는 사실이지만 일부는 사실이 아닙니다. 한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외교정책입니다. 현대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의 상황 속에서 어떤 나라와 손을 잡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패역과 반역이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입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거짓과 왜곡을 서슴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편향된 시각의 위험성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과 어떤 공동체를 바라볼 때 현재만을, 그리고 문제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대로만 보고 판단한다면 바른 시각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가 함부로 말하고 평가할 수 없는 삶의 깊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쪽으로만 보고, 문제만을 보고 쉽게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고,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21절)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으로 이어집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답신을 보냅니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니 편지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이것 역시 잘못된 결론입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패역하고 반역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고국으로 돌려보내 성전을 건축하게 하였는가? 역사를 살펴보면 페르시아 초대 왕인 고레스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귀환 목적에 따라 건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닥사스다의 결론은 대적들이 씌워준 프레임을 가지고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국에 손해가 발생하고 영토를 잃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20절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라고 하며 주변 모든 나라가 조공과 관세를 바쳤던 이스라엘의 과거 영광을 이야기합니다. 이때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때입니다.
결론적으로 왕은 건축을 멈추도록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런 편지가 전해지자 대적들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달려가 공사를 그치게 합니다. 이것을 23절 “권력으로 억제하여”라고 합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멈추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스라서가 시작될 때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감동하셔서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서 모든 일을 주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대적들의 행동은 세상 임금의 권력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24절은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고 합니다. 약 15년간 중단되었습니다. 참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때까지 중단되었다는 것은 결국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문제와 장애물을 만나도 절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동체를 바라봅시다. 지금까지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 안에서 바라보고 이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