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9절 /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

2026.06.1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1절)

창세기 묵상을 마치고 오늘부터 고린도전서를 묵상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파당 싸움, 음행, 법정 다툼, 우상 제물 논쟁, 은사 문제까지. 그런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쓴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책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분노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로 시작합니다.

1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첫 마디입니다. 내가 원해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이 뛰어나서 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아볼로와 비교하며 가볍게 여기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린도는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한 도시였고, 말을 잘하고 지식이 뛰어난 아볼로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를 직접 개척하고 오랜 시간 혼신의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한 사람이었는데도 가볍게 여겨졌습니다. 섭섭할 만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변호하거나 경쟁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원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삶을 살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사도로 부르신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은혜였습니다. 그 부름을 생각할 때마다 바울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삶은 우리가 묵상했던 창세기의 요셉과 비슷합니다. 순간순간 고통받고 눈물 흘렸지만, 하나님은 그 인생 전체를 통해 야곱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죽어가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전체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요셉처럼 바울처럼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십니다.

바울이 자신의 부르심을 이야기한 것은 성도들의 부르심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자신들이 어떤 부름을 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바울은 사도로, 성도들은 성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거룩하여지고’입니다. 앞으로 거룩해질 것이 아니라, 이미 거룩하여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고, 우리는 이미 거룩한 성도의 신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볼 때 거룩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부족하고 실수하고 죄를 짓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거룩하여졌지만 옛 사람의 본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가야 합니다. 거룩하지 못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가득한 고린도 교회를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릅니다. 완전한 교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교회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만 쓰신다면 부름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부족한 우리를, 부족한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8절)

4-7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감사를 표합니다. 5절 “모든 일 곧 언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하므로”, 7절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고린도 교회는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성경을 지식적으로 탐구했으며, 병 고치는 은사, 예언의 은사, 방언과 통역의 은사 등 다양한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대단한 교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의 씨앗이었습니다.

언변과 지식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자기 자랑이 되었습니다. 은사가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자기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은사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방향이 잘못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하나 이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8절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주님 앞에 설 날을 생각하며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 날에 “주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책망이 아닌 칭찬을 받는 삶이 중요합니다.

9절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이자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봉사 중심으로 하는 사람, 사람들과의 관계 중심으로 하는 사람,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신앙의 핵심은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기도로 주님과 대화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뿌리입니다.

주님과의 교제 없이 성도끼리의 교제만 활발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주님과 상관없는 모임이 됩니다. 서로 비난하고 세상 이야기만 가득한 모임. 그것은 세상 모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가 가진 문제의 뿌리였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첫째, 나는 성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부름을 받았는지 기억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하여진 하나님의 성도이고,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 정체성을 가지고 오늘 하루도 성도로서의 삶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갑시다.

둘째, 신앙의 핵심은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것이 모든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이 뿌리가 건강할 때 우리의 삶도, 공동체도 건강해집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며 한 말씀을 붙잡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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