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9 | 매일성경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2절)
역대상 17장은 하나님과 다윗의 맺은 언약이고, 18장은 하나님께서 언약 맺은 다윗을 어떻게 강하게 하시는지로 이어집니다. 다윗이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을 종으로 삼고 조공을 바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윗과 이스라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주변 나라들에는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다윗도 여느 정복자들처럼 자신의 야망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19장은 왜 다윗이 전쟁을 하게 되는지 이유를 알게 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 상대 나라에서 전쟁의 빌미를 줍니다. 그들이 전쟁을 시작합니다.
먼저 암몬 자손과의 전쟁입니다.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 나하스가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다윗의 사울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런 호의를 경험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한 다윗은 나하스의 장례식에 조문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런데 암몬의 신하들이 왕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절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다윗의 순수한 호의를 의심의 눈으로 보라 봅니다. 이 땅을 염탐하고 정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다윗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니 위협을 느끼고 피해의식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 한 나라를 대표해서 조문 온 사람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문제지만, 왕인 하눈은 신하들의 말을 믿고 조문단을 잡아 수염을 깎고 옷을 수치스럽게 잘라버립니다.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다윗이 듣습니다. 5절 하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8:14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라고 했는데 그런 모습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13절)
암몬 자손들은 이 사건으로 다윗과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을 직감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은 천달란트를 아람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받습니다. 7절 “곧 병거 삼만 이천 대”라고 합니다. 18:4절 보면 다윗이 소바왕 하닷에셀을 치고 얻은 전리품이 “다윗이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라고 합니다. 병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병과 보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병거 천 대도 작지 않은데, 병거가 “삼만 이천 대”라고 하니 규모가 엄청납니다. 거기다 분명 더 많은 숫자의 기병과 보병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도 작전을 짜서 암몬은 성 앞에 진을 치고 아람 군대는 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 용맹을 떨친 다윗의 장수가 있으니 요압입니다.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지혜로운 작전을 세웁니다. 숫자적으로 불리하니 전면전을 피합니다. 대신에 10절 “이스라엘에서 뽑은 자 중에서 또 뽑아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을 치고” 최고의 정예 용사를 선발합니다. 기습작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생 아비새와 협력하여 작전을 진행합니다. 요압이 행한 두 번째 일은 13절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성읍을 위한 싸움이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싸움이니 힘을 내자고 합니다. 군사작전만이 아니라 군사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킵니다. 그 결과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16-19절은 패배한 아람 군대가 다시 연합군을 형성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 전쟁도 다윗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람이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 싸웁니다. 결과 다윗이 승리합니다.
20:1-3절은 요압이 암몬을 격파한 내용입니다. 이미 암몬과 전쟁에서 이겼지만 완전히 정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왕이 전쟁에 나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요압이 나가고 20:1절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삼하11장을 보면 이때 밧세바와의 간음사건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이 내용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숨기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자는 다윗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승리 주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4-8절은 블레셋 거인들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장수들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20:4절 “십브개가 키가 큰 자의 아들 중에 십배를 쳐죽이매”, 5절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6-7절에서는 큰 키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있는 괴물같은 거인도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죽였습니다. 결론은 8절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고 합니다.
18-20장이 다윗의 전쟁과 승리에 관한 내용인데 시작이 블레셋이고(18:1), 마침 역시 블레셋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된 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대적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다윗이 해냈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인들의 이야기를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장수들이 용맹하게 거인들을 제거했습니다. 저자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고, 다윗의 장수들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요압의 고백처럼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힘을 내고 하루를 살아갑시다.
2025.06.18 | 매일성경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1절)
본문은 1절 “그 후에”로 시작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13장부터 시작된 법궤를 옮기는 일이 16장까지 이어졌고, 17장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과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이 이어집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한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의 종됨을 고백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가시는지를 본문은 보여줍니다.
본문의 핵심은 두 번 반복되는 6절과 13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어디로 가든지, 어떤 대적을 만나든지 하나님은 다윗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다윗이 정복한 나라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먼저 “블레셋”입니다. 다윗 이전까지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게 한 나라입니다. 대상10장에서 우리는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게 되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블레셋이 다윗의 손에 정복을 당합니다. 블레셋은 지도상으로 이스라엘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은 “또 모압을 치매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인데, 모압은 이스라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압이 다윗의 종이 되었습니다. 3절에는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가에서 자기 세력을 펴고자 하매 다윗이 그를 쳐서 하맛까지 이르고”라고 합니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세력을 넓히고자 했던 곳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입니다. 그곳까지 다윗의 영향력이 미칩니다. 5절 “다메섹 아람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이스라엘 위 북쪽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2절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인지라”고 합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모든 지역을 다스렸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말이 “다윗의 종이 되니라”입니다(2,6,13). 어제 본문인 17장 후반부에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종”이라고 반복적으로 고백했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종됨을 고백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많은 나라를 종 삼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세상은 어떻게든지 자신을 높이려 합니다. 자랑하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높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는 내가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13절)
다윗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얻는 것들이 본문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7절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8절 “심히 많은 놋을 빼앗았더니”, 10절 “하도람이 금과 은과 놋의 여러 가지 그릇을 가져온지라”, 11절 “모든 이방 민족에게서 빼앗아 온 은금과 함께 하여 드리니라”고 합니다. 많은 금과 은, 그리고 놋을 전리품으로 혹은 선물로 얻었습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렇게 모아진 금은동이 8절 하 “솔로몬이 그것으로 놋대야와 기둥과 놋그릇들을 만들었더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사용됩니다. 그래서 11절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라고 합니다. 당시 전리품은 승리한 사람의 몫입니다. 다윗이 가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드립니다.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은 성전을 지을 수 없지만 다윗의 마음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자신을 이어 왕위에 오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것인데 이 때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이 빠른 시간 안에 건축됩니다.
14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라고 합니다. 다윗은 정의와 공의로 백성을 다스립니다. 다윗은 이렇게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다윗의 왕조를 영원히 견고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일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다윗 자신이 하나님 나라 정신으로 이스라엘을 잘 다스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통치자의 방식인 억압과 착취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 정신인 정의와 공의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런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으로 가득한 인생,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 삶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어디를 가든지 승리케해주셨습니다.
2025.06.17 | 매일성경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영예에 대하여”(18절)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을 거절하십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 나라를 어떻게 세워주셨으며, 또한 앞으로 다윗 왕조를 어떻게 견고히 세우실 것인지를 말씀하시며 약속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세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다윗의 집을 세워주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이 마음에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감격의 기도를 올립니다. 16절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목동이었던 다윗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7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먼 미래의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나 다 자신의 후손들이 계속 왕위를 이어가길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계획과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온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십니다. 그러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말 문이 막힙니다. 18절 “이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아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 놀라운 계획과 약속으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들이 많지만, “종”이라는 단어가 10회 반복됩니다(17,18,19,23,24,25,26,27).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당시 왕은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높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종”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이십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높여주시고 견고한 왕조를 영원히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람들은 없는 것도 찾아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려 합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랑할 것이 많지만, 주장할 것이 많지만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은혜로 여기까지 왔고 은혜로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종 됨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을 존귀케 하시고 책임져주십니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도 그렇습니다. 죽을 인생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연약한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책임져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은혜입니다.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20절)
다윗은 감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하신 일로 이어집니다. 이 세상에 이스라엘과 같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위대한 능력을 경험한 나라가 없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크고 두려운 일을 애굽과 바로 앞에서 행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어제 하나님의 말씀처럼 성막에 거하시면서 가는 곳마다 함께 하셨습니다.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게 하시고 나라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것 역시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22절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백성들입니다.
어쩌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정체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실패와 절망인 것 같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유일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현실과 그로 인한 내 마음의 생각을 붙잡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바라보아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고, 붙잡아야 할 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은 23-27절 말씀입니다.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이 23절 “여호와여 이제 주의 종과 그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입니다. 다윗의 왕조가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다윗은 왜 이렇게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일까요?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감격해서 그렇습니다. 놀라워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다시 필요한 사람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듯 보입니다. 다윗의 왕조가 이어지다가 남유다가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왕조를 영원히 견고하게 해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이런 다윗의 기도를 통해 여전히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이 절망적인 현실 가운데서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이루어가십니다.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 완전하게 성취하십니다. 이를 통해 27절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다윗을 세우시고 다윗과 함께 하시며 다윗에게 영원한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까지의 은혜에 감사하고 앞으로 베푸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왕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약속의 말씀 붙잡고 살아갑시다.
2025.06.16 | 매일성경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1절)
13장부터 시작해서 16장까지 법궤를 옮기는 내용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실패 뒤에 점검하고 말씀을 따라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왕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17장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계획을 세웁니다. 성경 저자가 무엇을 중심으로 역대기를 기록하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누구보다 중요한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어떤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1절에 다윗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습니다.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주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14:1절을 보면 두로 왕 히람이 배향목을 보내고 기술자들을 보내 다윗 왕궁을 건축해주었습니다. 외교적인 목적을 위해 지어주었기 때문에 분명 크고 화려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16:39절을 보면 여호와의 언약궤는 “기브온 산당 여호와의 성막”에 놓여져 있습니다. 성막을 이동식 텐트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귀합니다. 자신이 크고 화려한 집에 거주한다면 자랑할 만도 하고 편리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의 성막과 그 곳에 놓인 언약궤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갖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들은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을 위한 일이니 당연히 좋게 여기고 2절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3절 “그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4절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건축하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일까요? 본문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5-10절까지 내용을 보면 지금은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시기가 아니라 다윗의 왕위와 이를 통해 이스라엘 나라를 견고히 세워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상22:8절을 보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스라엘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렀고 당연히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 다윗이 평화의 상징인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한 왕조를 세울지라”(10절)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으며, 또한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셔서 광야를 지나 지금까지 인도하시면서 집에 거하지 않으시고 5절 “오늘까지 집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 있었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크고 화려한 집이 아닌 이동식 텐트인 성막에 거하셨습니다. 이유는 이동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역대하6:18절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성막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성전을 지었지만 이 성전도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는 장소라는 겁니다. 심지어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고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기꺼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작은 성막에 함께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기를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하나님을 위해 백향목 집을 건축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양을 치던 다윗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의 주권자,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과거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셔서 8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고 하십니다. 다윗을 높여주시고, 그 이유는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견고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10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한 왕조를 세울지라”고 합니다. 개역성경은 “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찌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 집을 세우겠다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집을 세워주신다는 말씀이 12절 하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입니다. 누구도 빼앗거나 흔들 수 없도록 견고한 나라, 왕위가 이어지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십니다. 다윗 이후 남유다는 위기 속에서도 다윗의 후손을 통해 왕위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나라가 멸망하였지만, 이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왕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 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의 집을 세워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높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025.06.11 | 매일성경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3절)
역대상을 통해서 보면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된 후 처음으로 한 일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입니다. 이 내용은 삼하 6장에도 나오는데, 차이점은 사무엘하 내용은 다윗이 주도적으로 궤 옮기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다윗이 지도자들과 의논하고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온 회중”(1,4), 온 땅(2), 온 이스라엘(5,6)이 반복됩니다. 왕이지만 명령이 아닌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중요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2절 앞부분을 새번역으로 보면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좋게 여기고 우리 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입니다. 다윗은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그리고 백성들이 좋게 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 두 가지는 기억해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멈추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뜻일지라도 사람들과의 의논과 동의를 얻어 진행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물론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과 양보가 있을 수 없지만, 많은 문제들은 진리가 아닌 문제를 일방적으로 진행할 때 일어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이유는 3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묻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지금 하나님의 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삼상 4-7장을 보면 길게 하나님의 법궤가 어떻게 블레셋 땅으로 가게 되었고, 또한 어떤 과정으로 이스라엘로 돌아와 기럇여야림에 오게 되었는지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법궤 사건이 이스라엘 신앙의 현주소를 알려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마저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이스라엘의 잘못된 신앙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법궤는 기럇여아림 아비다납의 집에 20년 동안 있게 됩니다(삼상7:2절). 문제는 사울이 법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윗은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대상10:14절은 사울의 죽음과 실패를 이야기하면서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고 합니다. 사울의 실패 원인은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왕으로 통치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지만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따라 통치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결과는 실패입니다. 비록 작은 일을 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면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사울과 달리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자 합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자신이 왕이지만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묻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14절)
궤 옮기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5절 “다윗이 …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6절 “다윗이 …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옮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함부로 만져서도 아무렇게나 옮겨서도 안 되고 반드시 레위 자손이 어깨에 메는 방식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7절에 가면 이렇게 바뀝니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그리고 수레에 실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서 웃사라는 사람이 죽게 됩니다.
수레에 싣고 가는데 소들이 뜁니다. 법궤가 넘어지려 합니다. 수레를 몰던 웃사가 자동적으로 손을 들어 궤를 붙잡았습니다. 궤를 넘어지지 않게하려는 좋은 행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웃사를 치시고 죽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일이어도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은 수레에 궤를 싣고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메어 옮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수레에 옮겼을까요? 쉽게 설명하는 우리도 말씀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실용성과 편리함 때문입니다.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도보로 약 14km정도의 거리로 3-4시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궤를 어깨에 메고 가는데는 보통 수고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실용적으로 수레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편리하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블레셋에서 이스라엘로 법궤가 돌아올 때 블레셋 사람들이 암소 두 마리가 모는 새 수레에 법궤를 실어 보냈습니다. 지금 방식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합니다. 즉 다윗과 이스라엘이 좋은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기준이 섞여 있습니다. 자신들의 편리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해서 적용합니다. 문제는 시작하고 있는 다윗 왕국에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다윗 역시 사울의 길을 가지 않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깨닫게 하십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12절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뜻대로 법궤가 함께 한다면 그것을 복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예루살렘으로 옮겨가지 못한 법궤는 오벳에돔의 집에 머뭅니다. 그 결과는 14절 하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진노가 아닌 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과의 관계, 즉 말씀과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된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크심과 두려우심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을 따라 행합시다.
[출처] 역대상13:1-14절/궤를 옮겨오자(25.06.11)|작성자 늘봄교회
2025.06.10 | 매일성경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2절)
다윗과 함께 했던 충성스런 용사들이 이야기가 11장에 이어 계속됩니다. 오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1-22절까지는 다윗이 사울에 의해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 다윗에게 나온 용사들에 관한 내용이고, 23-40절까지는 유다를 다스리며 헤브론에게 있던 다윗에게 모든 이스라엘 용사들이 나와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운 이야기입니다.
1절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역대기는 사울이 어떻게 해서 왕이 되었으며, 어떻게 통치를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죽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절은 사울로 인해서 다윗이 숨어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사울은 왕이고 다윗은 도망자입니다. 그런데 도망자로 숨어 있는 다윗에게 용사들이 나온 것입니다. 그것도 2절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입니다. 우리나라도 지역 성향이 강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자파 중심의 공동체였습니다. 사울이 베냐민 지파이고, 그렇다면 베냐민 지파가 전폭적으로 사울을 지지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상당수가 다윗에게 나옵니다.
16절도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오매”라고 하면서 베냐민 지파가 다윗에게 나왔음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이 속한 지파인 유다 지파와 함께 나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가 왕의 자리를 놓고 갈등 관계가 아니라 하나됨을 이루었음을 강조합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다윗에게 나왔다는 것은 이들이 지역감정이나 혈연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를 깨닫고 순종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깨어있는 생각, 바른 생각들이 다윗이 통치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8절은 “갓 사람 중에서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 용사들이 얼마나 용맹스러운지를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윗에게 나온 때는 다윗이 “광야 요새”에 있을 때입니다. 1절에 나온 용사들은 다윗이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였고, 16절도 “요새”에 있을 때이며, 20절도 “시글락”에 있을 때입니다. 즉 이들은 왕이 된 다윗이 아닌, 도망자였던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환경이요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마음을 다윗에게로 향하고 충성했던 용사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로, 하나님 나라로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용사들이 함께 다윗에게 나오자 다윗이 묻습니다. 17절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도망자인 다윗을 사울에게 넘기려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다윗은 이들이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배신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그러자 우두머리인 아마새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렇게 답합니다. 18절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을 알았고, 그런 다윗과 함께 하기를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나라를 이룬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22절)
대표적인 이야기가 19절에 나옵니다. 이 한 절은 삼상29장을 요약해 놓은 내용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추격으로 이스라엘에 남아 있을 수 없어 블레셋으로 망명합니다. 이때 블레셋 왕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다윗이 함께 출정하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다윗의 손으로 사울 왕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장수들이 거세게 반대합니다. 다윗이 블레셋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에 함께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전쟁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이스라엘 왕으로서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22절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다윗과 함께 하시니, 비록 도망자의 신세이지만 돕는 용사들이 늘어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합니다.
23절부터는 헤브론에서 다윗을 통일왕국의 왕으로 추대할 때 나온 각 지파 용사들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을 알기 위해서는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의 숫자와, 다른 지파 특히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숫자를 비교하면 됩니다. 24절 유다 지파 용사 숫자는 6,800명입니다. 그런데 30-31절 에브라임 용사 숫자는 20,800명입니다. 므낫세는 18,000명입니다. 유다 지파에 비해서 아주 많은 숫자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유다 지파만의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왕이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38-40절은 사흘 동안 진행된 왕 즉위식 잔치를 설명하는데, 38절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라며 “한 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40절 하 “이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쁨이 있음이었더라”로 마칩니다.
다윗이 통일왕국을 이룹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갑니다. 이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가능합니다. 또한 다윗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좋은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나온 용사들의 충성스러움,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는 충성이 모아져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