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5 | 매일성경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3절)
성벽 봉헌식을 하며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말씀을 통한 부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말씀이 백성들을 새롭게 합니다. 점점 더 온전케 합니다. 이들이 낭독한 내용은 1절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신23:3-6절의 내용입니다. 암몬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출애굽하여 광야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척하고 잔인하게 공격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이라는 주술사에게 뇌물을 주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습니다.(민22-24장) 하지만 하나님은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민24:10절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니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기준을 따라 분리해야 합니다. 이전 에스라 때에는 이방인과 통혼하는 문제가 있어 스10:11절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관계의 단절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의 완전한 분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절은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신앙의 순수성과 거룩함을 위해 섞이면 안 됩니다. 분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계속 이스라엘은 섞여 있었습니다. 분명 공동체에 분명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지 못했고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깨닫고 분리합니다. 우리도 말씀을 묵상하며 작은 부분 하나도 점검하면서 세상 속에 살지만 구별되어야 합니다. 구별된 가치관,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분리해야 할 것을 분리해야 합니다.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11절)
이어지는 4-13절은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면서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인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교제하면서 도비야를 위해 성전에 큰 방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의 원래 목적은 제사장과 성전 봉사자들인 레위사람들을 위해 예물을 쌓아 놓는 방이었습니다. 도비야는 어떤 인물입니까? 1절에서 분리해야 할 대상인 암몬 사람입니다. 산발랏과 함께 성벽 재건을 방해하며 조롱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자가 다른 곳도 아닌 하나님의 성전에, 다른 방도 아닌 성전 봉사자들을 위해 예물을 보관하는 방에 머물렀다는 것이 충격입니다. 그 일을 대제사장인 엘리아십이 주도했다는 것은 더 충격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너무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모든 과정이 말씀 중심으로 회개와 은혜 속에서 회복되어 갔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6절은 이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설명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있지 않을 때 일어났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32년에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에게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예루살렘에 올 때 돌아온 기간을 정하고 왔기 때문입니다(2:6절).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때는 2:1절을 보면 아닥사스다 제2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간 때는 아닥사스다 32년입니다. 12년 정도 총독으로 일을 하다 돌아간 것입니다. 그 이후 일어난 일입니다. 대제사장인 엘리아십은 아마도 느헤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일을 저지른 듯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의 행동은 진실이 아닌 가식이었습니다. 13:28절에도 보면 대제사장인 엘리아십의 손자가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아닌 사람 앞에서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마음 중심이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가 아닙니다.
6절 하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며칠 후”를 새번역성경은 “얼마가 지나서”로 번역했고 아마 2-3년 후에 돌아온 것 같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돌아가서도 고국에 대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염려가 된 듯합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는데 짧은 기간 안에 예루살렘은 많은 것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앞에서도 계속 강조하였듯 외형적인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내적인 신앙을 온전히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성전도 성벽도 세워져 있지만 마음의 성전이 무너지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세우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알고 도비야의 세간을 방 밖으로 다 던지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다시 예물을 들여놓습니다.
도비야가 성전 방을 차지한 것은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12:44-47절에 나온 것처럼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레위인들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생계를 위해 밭으로 도망합니다. 성전 중심 예배를 위해 질서있게 조직했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신앙이 이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지도자들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불러 다시 제자리에 세웁니다. 오늘 본문에 “다시”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9절 “다시 그리로”, 11절 “다시 제자리로”. 그렇습니다. 다시 원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도 치울 것은 치우고 다시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다시 곳간에 성전 봉사자들을 섬길 예물을 채우고 관리하는 자들을 세웁니다. 이들은 13절 하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정직하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세웁니다. 그리고 바르게 분배하게 합니다. 늘 강조하지만 사람이 중요합니다.
우리 일상에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과 순결을 위한 분리가 필요합니다. 다시 채워야 할 것으로 마음의 성전을 채우고,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가 서야 합니다.
2025.12.04 | 매일성경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27절)
성벽을 완공 후 말씀 중심의 신앙회복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과 새롭게 언약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성벽 봉헌식이 이루어집니다. 성벽 봉헌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전에 비하면 성벽은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있지만, 성벽이 없는 성전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온전한 예배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벽이 완공되어야 모든 것이 안정되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도 온전해 집니다.
그런데 성벽 공사가 쉽지 않았습니다. 내부, 외부적으로 많은 장애물과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이기고 완공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의미로, 또한 완공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봉헌식을 진행합니다.
봉헌식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레위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있어야 27절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포로에서 돌아온 레위인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도 예루살렘 근처에서 살고 있다가 모여듭니다. 이렇게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할 사람들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봉헌식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30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정결입니다. 사람들이 정결해야 합니다. 제사장, 레위인들 그리고 백성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문과 성벽까지 정결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정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봉사할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정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벽 봉헌식은 특이하게 진행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성벽 위로 오르게 합니다. 뒤를 이어 감사 찬송하는 큰 무리가 따르게 하는데, 이들을 둘로 나누어 서로 반대쪽으로 걸어가며 찬양하게 합니다.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이 무리의 인도자는 36절 하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라고 합니다. 에스라입니다. 이들은 분문을 지나 샘문, 그리고 수문으로 향합니다.
에스라가 인도하는 무리와 반대로 왼쪽으로 향하는 무리는 느헤미야가 지도자입니다. 이 무리도 백성의 지도자와 찬양하는 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뒤를 따라갑니다. 화덕 망대를 지나 옛문과 어문, 그리고 양문을 지나 감옥문에 멈춥니다. 이렇게 행진하여 두 무리가 함께 만난 곳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행진은 성전 반대 쪽에서 시작해서 성전에서 만나도록 진행되었습니다.
성벽 위를 걸으며 감사 찬양하는 무리의 마음에는 큰 감격과 감사가 넘쳐났을 것입니다. 방해하는 자들이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백성들이 세우려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견고한 성벽을 완공하고 그 위를 걸으며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니 감격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함께 성전에 모였을 때는 42절 하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라고 합니다. 성전이 큰 찬양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43절)
그리고 이들은 43절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립니다. 큰 제사는 많은 예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이것을 43절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라고 “즐거워하고”를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부녀와 어린 아이까지 모두가 즐겁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즐겁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즐거움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주어졌습니까?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했을 때 큰 즐거움이 주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편안함과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기뻐하시는 일,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을 감당할 때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이제 성벽 봉헌식을 마쳤으니 앞으로 계속해서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입니다. 또한 이들이 지속적인 봉사를 하려면 이들의 생계를 채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백성들이 드리는 예물을 곳간에 채웁니다. 거제물과 첫 열매, 그리고 십일조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힘을 다하여 노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들의 인도로 함께 예배하는 백성들의 마음에도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도록 하십니다. 또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백성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줍니다. 이렇게 둘은 하나가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지를 돌아봅니다. 습관적인 예배가 아닌 일상의 정결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서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진정한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므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수고스럽지만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2025.12.03 | 매일성경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1절)
오늘 본문에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 관한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장에도 10절부터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명단이었습니다. 그런데 11장은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들의 명단이라고 한다면, 본문은 1차 포로 귀환 때부터 시작해서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명단을 따로 소개하는 이유는 12:27절부터 시작되는 성벽 봉헌식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성벽이 완공된 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이전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예배하는 일을 담당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입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느헤미야의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외형적인 건물이 잘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회복 우선입니다. 성전 제도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도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1절은 1차 포로 귀환 때부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시대로부터 약 100여년 정도 앞선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페르시아 고레스왕의 마음의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귀환하게 합니다. 스룹바벨은 총독으로 정치 지도자였고, 예수아는 대제사장으로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1-7절에는 돌아온 제사장들의 대표 22인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이때 함께 돌아온 레위 사람 명단입니다. 제사장들의 명단이 많은 반면 레위 사람 지도자는 6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감당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24절도 그렇습니다.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이들은 찬양대를 조직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맞은편에도 찬양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찬양대가 둘로 나뉘어 서로 찬양으로 화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전과 관련하여 노래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돌리는 것이 성전 예배에서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사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입술의 찬양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삶이 찬양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10절)
10절부터는 대제사장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차 포로 귀환 때 예수아부터 시작해서 요아김, 엘리아십, 요야다, 요나단, 그리고 얏두아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엘리아십이 대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신앙이 어떻게 이어져 사명을 잘 감당하느냐가 이스라엘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처럼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닌 역사 속에서 신앙의 전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현재 이처럼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본이 되는 신앙은 우리 자녀와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합니다. 미래가 어둡다고 합니다. 교회마다 아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가 기도하며 미래세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복음을 전하며,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12절부터는 예수아를 이은 대제사장 요야김 시대의 제사장 가문의 족장들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귀향민 2세대에 활동한 제사장들입니다. 마치 100년 이상된 교회의 교회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보면 1대 목사님부터 2대 목사님 등 시대별로 누가 사역했으며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22절부터는 제사장들의 계보가 계속 이어졌던 것처럼 레위인들의 계보 역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4절은 레위인들의 찬양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며, 25절은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라고 합니다. 성전 창고를 지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크고 작음과 어렵고 쉽고를 떠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은 무엇이 되었든 신실하게 감당합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공동체는 아름답게 세워지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름답게 드려집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신앙이 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벽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앞두고 있는데, 건물이 세워진 것보다 신앙이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건물일지라도 다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을 점검하고 무너진 곳이 있다면 다시 세워나갑시다.
2025.12.02 | 매일성경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1절)
예루살렘 성벽이 52일 만에 하나님의 은혜와 백성들의 수고로 완성된 후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7:4절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급선무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도자들은 누구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지도자들의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합니다. 두 번째는,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합니다. 7:5-73절까지 계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 1/10을 뽑아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합니다. 제비뽑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갑니다. 이처럼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공동체는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세 번째는, 2절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라고 하는데 예루살렘에 살기를 자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성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주를 자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자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든든하게 세워지고 확장되어 갑니다.
이어 3절부터는 예루살렘에 거주한 지방의 지도자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4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쉽게 말하면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 두 지파가 남유다를 이루었고 포로에서 귀환할 때도 중심이 되었습니다. 먼저 4절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입니다. 그리고 5절의 ‘마아세야’입니다. 6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유다 지파 베레스 자손은 468명으로 용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루살렘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살루와 갑배, 살래 등으로 928명입니다. 그 가운데 9절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고 합니다. 이들이 예루살렘 성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17절)
다음으로는 제사장들의 명단입니다. 10-11절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라고 합니다. 스라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맡은 자”입니다. 이처럼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이 822명이요, 형제의 족장된 자가 242명, 형제의 큰 용사들은 128명입니다. 제사장들 가운데도 큰 용사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듯 제사장들의 숫자는 많습니다.
제사장들에 이어 레위 사람이 소개됩니다. 16절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제사장이 성전의 안쪽 일을 맡았다면 레위인들은 성전의 바깥 일을 맡아 감당했습니다. 예를 들면 백성들의 헌물으로 모아 성전에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는 일 등입니다. 그 가운데 17절 “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이들은 성전 소속 성가대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성 문지기들(19-20절), 느디님 사람들(21절), 노래하는 자들(22-24절) 순으로 소개됩니다. 그 중 22절의 ‘웃시’가 노래하는 자들의 감독으로 봉사합니다. 그는 23절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일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필요한 부분에 사람들을 세워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25-36절까지는 예루살렘 주변에 사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거주지역입니다. 어디에 살든지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공동체에 필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부족한 부분을 지혜롭게 잘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에 부족한 인원을 제비뽑기 방식을 통해 채웠습니다. 지혜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백성들 역시 수고와 헌신으로 함께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도자들의 모범입니다. 그동안 지도자들로 인해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에 지도자들이 앞장섭니다. 세 번째는 백성들이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각자 맡겨진 사명에 충실합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안 일을 하고 레위인들은 바깥 일을 맡습니다. 기도할 때 말씀을 인도하는 자도 있고, 매일 노래하는 자들에게 할 일을 정해주는 자도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주신 사명을 따라 묵묵히 감당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소중하게 감당합니다. 그런 수고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룹니다.
2025.12.01 | 매일성경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29절)
8-10장에서 백성들은 성경을 읽고 회개하면서 과거 역사를 돌아봅니다. 결론은 9:32절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인자하심으로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9:34절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9:36절 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행복을 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회복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9:38절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우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분주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지나온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점검하여 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10장에는 언약을 맺은 사람들과 구체적인 언약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7절은 언약맺은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많은 이름이 나오는데 구분해보면 1절은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입니다. 최고지도자입니다. 그리고 2-8절까지는 제사장들입니다. 9-14절은 레위인들이고 14-27절까지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입니다. 한마디로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문제의 많은 부분이 지도자들의 문제였습니다. 이방인들과의 통혼 문제도 그렇고, 가난한 백성들을 힘겹게 해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먼저 하나님과 언약을 세웁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합니다. 내용이 29절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순종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짐을 지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신분,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졌으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신10:13절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율법이 짐이 되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멀어지므로 발생한 일입니다. 결국 말씀보다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다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39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은 구체적인 결단을 합니다. 첫째 이방인과 통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30절). 하나님만 섬기며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다고 합니다(31-32절). 하나님 백성의 특징은 안식, 즉 쉼입니다. 세상의 특징은 쉼이 없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그것이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나만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쉼을 누리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삼분의 일 세겔을 수납하여 성전 예배를 위해 사용하게 합니다. 백성들이 언약을 맺으며 이렇게 결단하는 것을 보면 그 전에는 이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성전 예배를 무력화시켰고 그 결과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우리가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35-37). 토지 소산의 맏물과 과목의 첫 열매를 드릴 뿐 아니라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도 드립니다. 특이한 것은 맏아들을 드리는 겁니다. 이것은 출애굽 유월절에서 어린양의 피로 장자들이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맏아들을 성전에 바친 것이 아니고 민18:15-16절을 보면 다섯 세겔을 속전으로 지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기업이 없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 봉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고, 반대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백성들을 영적으로 채우는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잘 세워주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39절 하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성전 중심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함이 중요합니다. 창조주되시며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다른 것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회복을 위한 목록 대부분이 물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인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니 말씀의 기준대로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책임져주실 것을 신뢰하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