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
8장에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 문제를 다루며, 자유가 있더라도 연약한 성도를 위해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9장 앞부분은 바울 자신이 사도로서 마땅히 누릴 권리를 어떻게 절제했는지 설명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절제의 이야기를 운동 경기에 빗대어 이어갑니다. 이어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울 삼아 고린도 성도들에게 경고를 전합니다.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달리기에 비유합니다. 고린도에는 유명한 운동 경기가 있었기에, 성도들은 이 비유를 곧바로 알아들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핵심은 ‘절제’입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는 4년 만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피땀 흘려 절제하고 훈련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신앙이 성장하는 일은 없습니다.
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운동 경기의 우승자가 쓰는 월계관은 곧 시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사라질 관을 위해서도 사람들은 그토록 절제하는데, 우리에게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더더욱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혼란스러운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대로, 절제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절제가 있어야 개인 신앙도 공동체도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26절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아무리 잘 달려도 결승점과 반대로 달리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신앙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듯, 우리 신앙의 초점은 주님이어야 합니다. 만일 신앙의 목표가 나 자신, 내 영광, 내 성공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향방 없이 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그 밑바닥의 동기가 무엇인지 살피고, 오직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7절에서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만큼 헌신한 사람도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정작 자신이 절제하지 못해 버림받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깨어 있음입니다. 앞장서서 신앙 생활하는 이들이 특히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6절)
10장에서 바울은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져와서 고린도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1-2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출애굽 후 광야를 지나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구약 백성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홍해를 통과한 사건을 세례로 본 것입니다. 또한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를 먹고 마셨다고 하는데, 신령한 음식은 만나, 신령한 음료는 반석에서 난 물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 광야의 은혜를 성찬과 연결합니다. 그리고 그 반석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구약 백성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그들은 고린도 성도들과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5절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 큰 은혜를 받고도 광야에서 멸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삼아 네 가지를 경고합니다.
첫째, 우상숭배입니다. 7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사이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뛰고 놀았던 사건입니다. 바울이 이 문제를 첫 번째로 지적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다룬 우상의 제물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신전에서 음식을 먹는 일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그 도시 유력자들이 모이는 사교의 중심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이나 이익을 지키는 길이 되기도 했기에, 성도들이 “나는 괜찮다”며 참석했습니다. 그것이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둘째, 음행입니다. 광야에서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은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셋째, 주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은 사건입니다. 넷째, 원망입니다.
11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이 경고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신전에 들어가 우상을 섬기지는 않지만,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이 시대의 우상입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우상인 줄도 모르고 붙들고 사는 것들이 많습니다. 돈, 자녀, 권력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살피는 일이 필요합니다.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 성도들은 자기들이 잘 서있 다고 자랑하며 아무 문제 없다고 여겼습니다. 바울은 그러다 넘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깨어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시험에 대해 말합니다.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앞의 경고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고 음행하고 시험하고 원망한 것은, 대부분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것을 시험거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시험과 문제를 만날 때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시험을 만나면 이것이 우리를 삼키고 끝장낼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고, 반드시 피할 길을 내십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이건 못 이기겠다” 싶던 문제들이 결국 지나갔습니다. 이 말씀이 이미 우리 삶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절제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썩지 아니할 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내 삶에서 절제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살피며, 신앙의 경주를 잘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선 줄로 생각할 때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서 있다고 교만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구약 이스라엘이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늘 깨어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시험을 만나도 감당할 길과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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