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16-28절 / 각 사람의 분량대로(26.05.29)

2026.05.2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18절)

야곱은 어제에 이어 나머지 여섯 아들에게 축복합니다. 유다에게 가장 길게, 요셉에게도 길게 이야기했다면, 나머지 아들들에게는 짧게 선포합니다. 그러나 짧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맞는 선포를 합니다. 28절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이 한 명 한 명의 삶을 보고, 거기에 알맞은 복을 선포했습니다.

16절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심판’한다는 것은 단 지파가 이스라엘의 기준과 모범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단은 길의 뱀이요 밭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뱀과 독사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이것은 단 지파의 지략을 말합니다. 숨어서 기다리다가 정확한 순간에 공격하는 능력, 즉 지혜로운 전략으로 적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 뒤에 야곱이 갑작스런 고백을 합니다.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왜 이 고백이 여기에 나올까요? 단 지파가 지혜롭고 지략이 뛰어날 것이라는 말을 하다가,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것 같습니다. 야곱 자신도 지략과 꾀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아버지를 속이고. 그런데 그것이 자신을 혼돈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인생을 하나님은 과정과정을 통해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단 지파가 지혜롭다는 말 뒤에 이 고백을 붙인 것입니다. 인간의 지략이 아무리 탁월해도,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것이 야곱이 평생에 걸쳐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방법을 찾아도, 진정한 복과 구원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내 노력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9절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 지파는 위기에 몰릴 것 같지만 오히려 역전승을 거두는 역할을 합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반격하는 지파입니다. 20절 아셀은 기름진 것을 생산하여 왕의 수라상을 차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지파들처럼 싸움을 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재료를 생산하여 왕의 식탁을 풍요롭게 채우는 일을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역할입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으로 비유됩니다. 자유롭고 민첩합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그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갓, 아셀, 납달리는 유다나 요셉처럼 긴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한 종류의 사람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눈에 띄는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공동체가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십니다. 서로를 비교하며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24절)

오늘 본문에서 요셉에게 가장 풍성한 말씀이 선포됩니다. 22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무성한 가지는 풍요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냥 무성한 것이 아니라 샘 곁에 있습니다. 생명의 물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무성한 것입니다. 시편1:3절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은 복입니다. 그리고 그 가지가 담을 넘었습니다. 자기 자리를 넘어 다른 곳에도 영향을 끼치는 삶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런 축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23절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도다” 이 무성함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형들의 미움, 노예의 삶, 억울한 감옥.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24절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요셉이 굳셀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 반석이신 하나님, 목자이신 하나님이 요셉의 손을 붙잡고 계셨습니다. 야곱은 전능자, 반석, 목자라는 단어를 연이어 사용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형들에 대한 분노를 품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노예 생활에서도 성실할 수 있었던 것,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은 것.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람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그의 손을 꼭 붙잡고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줄 수 없는 복을 주십니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깊은 샘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복까지. 전능자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입니다.

고난은 끝이 아닙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선포한 이 축복은 고난 없이 온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과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어떤 고난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무성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26절 “내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리로다” 하나님의 약속은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더 구체화되고 풍성해집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삭을 거쳐 야곱에게 왔고, 이제 요셉에게 흘러갑니다.

27절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물어뜯는 이리. 강력한 전사의 이미지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용맹한 군사적 지파로 성장할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8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새번역은 “그는 아들 하나하나에게 알맞게 축복하였다”입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 모두에게 같은 복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삶을 보고, 각자에게 맞는 복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은 준비된 사람에게 맞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 복을 담을 그릇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받는 큰 복은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복의 그릇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고백처럼, 우리의 지략과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내가 먼저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복이 옵니다.

다른 하나는 고난을 통과하는 자에게 무성한 가지의 복이 옵니다. 요셉처럼 전능자이시고 반석이시고 목자이신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고 고난의 길을 걸어갈 때, 그 고난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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