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27-48:7절 /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26.05.26)

2026.05.26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29절)

야곱이 애굽에 온 것은 130세였습니다. 그동안 죽었다고 생각했던 요셉을 만났고, 고센 땅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17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야곱의 나이 147세,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형을 속이고 도망쳤고, 외삼촌에게 속임당하고,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먼저 떠나보냈고, 아들 요셉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애굽 땅에서 보낸 마지막 17년은 달랐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만났고, 고센 땅에서 가족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야곱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면입니다.

27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어제 말씀과 대조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애굽 백성들은 기근 속에 모든 것을 잃고 바로의 종이 되었습니다. 특권층인 제사장들만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족은 고센 땅에서 생업을 얻고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총리인 요셉의 배려도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민족을 이루게 하시려고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총리가 되게 하시고, 야곱 가족이 고센 땅에 오게 하신 모든 과정을 통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기근으로 황폐할 때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부릅니다.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분명 가장 중요한 내용일 것입니다. 29-30절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실에 장사하라”

야곱이 원한 것은 단 하나, 애굽 땅이 아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히는 것이었습니다. 허벅지 아래 손을 넣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가장 엄중한 맹세의 방식이었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을 의미했습니다. 요셉이 30절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라고 했는데도 야곱은 31절에서 다시 “내게 맹세하라”고 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부탁입니다.

왜 그토록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원했을까요? 야곱에게 애굽은 이 세상이었습니다. 비록 풍요롭고 문명이 발달한 곳이지만,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고향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가야할 본향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입니다. 비록 지금은 그곳에 없지만, 죽어서라도 그 약속의 땅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자기 몸이 묻힌 곳이 어디인지를 통해 자손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이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곳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속한 사람으로 살고 죽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우리도 화려하고 풍요로운 세상 속에 살지만 이 땅이 전부가 아니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이 비록 몸은 애굽에 있지만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임을 항상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5절)

48장에서 야곱은 더욱 쇠약해졌습니다. 요셉이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그 야곱이 죽음 직전에 꺼낸 이야기는 세상에서 이룬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3-4절 “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루스, 곧 벧엘이었습니다. 형을 피해 도망치던 야곱이 돌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자리.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셨던 그 약속. 험악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놓지 않았던 그 약속. 야곱은 죽음 앞에서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우리가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야곱은 한때 세상의 축복을 갈망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선 야곱이 기억한 것은 벧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비록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야곱의 인생 전체를 이끌어오셨고, 이제 세상의 축복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특이한 말을 합니다. 5절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 될 것이라”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이 자기 아들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을 ‘장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장자는 두 배의 몫을 받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받아들임으로써, 요셉은 한 몫이 아닌 두 몫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후에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각각 땅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주어지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이스라엘 민족의 왕권과 메시아가 오는 조상은 유다가 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그곳이 우리의 최종 고향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야곱의 험악한 세월이 그를 오늘의 야곱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려움도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가시는 과정입니다. 죽음 앞에서 벧엘의 약속을 기억한 야곱처럼,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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