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4:18-34절 / 그 아이를 대신하여(26.05.20)

2026.05.2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18절)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베냐민만 종으로 남기고 열 명은 자유롭게 돌아가면 됩니다. 과거라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요셉도 팔아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다시 요셉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창세기에서 한 사람의 말로는 가장 긴 고백이 시작됩니다.

18절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범죄 사실이 명백한 상황에서 죄인이 총리 앞에 나아가 말을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다가 앞장섰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전에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 제안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형제들은 그 말에 청종했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문제를 해결하러 앞에 나섭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유다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처음부터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요셉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시작하는 유다의 설명은 “주께서”라는 단어를 반복합니다. 19절, 21절, 23절에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당신이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물었고, 우리는 사실대로 답했으며, 그러자 당신이 막내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상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모든 과정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막내를 잃으면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27-29절에서 유다는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짐승에게 찢겨 죽었고 이 아이 하나만 남았습니다. 이 아이마저 사라진다면 흰머리가 슬픔으로 스올에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30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야곱에게 베냐민은 삶의 이유였습니다. 베냐민이 없으면 아버지는 살지 못한다는 것을 유다는 알았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유다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해서 ‘담보’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32절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채색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가져갔습니다.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찢어지는 고통을 당했을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감정, 자기 시기와 미움에만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는 다릅니다. 아버지의 아픔을 헤아립니다. 막내가 사라지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찢어진 요셉의 채색옷을 보았을 때 아버지의 마음이 찢어졌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내 생각만 하는 어린아이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어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33절)

33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해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죄는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책임질 사람은 베냐민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나서서 내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베냐민이 짊어져야 할 것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겠다는 것입니다.

34절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이 말에서 유다의 간절함이 드러납니다. 베냐민 없이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버지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유다의 이 고백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베냐민이 짊어져야 할 죄의 짐을 유다가 대신 짊어지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 예수님이 하신 일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베냐민의 자리에 있습니다. 죄의 증거가 발견된 사람들입니다.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요셉을 노예로 팔던 일에서 베냐민을 노예에서 건지는 일로 바뀌었듯이, 죄인이었던 우리가 은혜를 입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성숙의 모습입니다. 유다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던 사람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우리도 내 입장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베냐민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죄의 짐을 짊어진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담보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오늘 다시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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