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4:1-17절 /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26.05.19)

2026.05.1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2절)

요셉이 베푼 기쁨의 잔치가 끝났습니다. 형제들은 양식을 가득 싣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붙잡혀 있던 시므온도 살아서 만났고, 베냐민도 무사히 함께 갑니다. 걱정했던 모든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돌아가 당당하게 아버지를 만나면 됩니다. 그런데 성읍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요셉의 청지기가 그들을 쫓아왔습니다. 4절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라고 호통을 칩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떠나기 전 청지기에게 명령했습니다.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가득 채우고, 그들이 가져온 돈을 다시 자루에 넣어라. 그리고 2절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라고 했습니다. 왜 요셉은 이런 일을 꾸몄을까요? 복수가 아닙니다. 요셉은 이미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라헬의 자녀 요셉 한 명과 다른 어머니의 자녀 열 명. 그 열 명이 한 명을 시기해서 노예로 팔았습니다. 지금도 구조가 같습니다. 라헬의 자녀 베냐민 한 명과 다른 어머니의 자녀 열 명. 만약 형들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면, 베냐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것과 동일한 상황을 만들어 형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려 했습니다. 미래 이룰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중요한 지점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은잔 사건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청지기가 형들을 붙잡았습니다. 누가 주인의 은잔을 훔쳐갔는지를 묻자, 형들은 당연히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9절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그러자 청지기는 조건을 조금 낮춰 제시합니다. 10절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그리고 자루를 하나씩 열기 시작했습니다. 큰 형부터 차례로 열어보았는데 마지막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베냐민이 가장 놀랐을 것입니다. 자기는 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형들도 당황했을 것입니다. 어찌 됐든 상황은 분명해졌습니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이 상황이 형들에게 선택의 순간입니다. 청지기가 말했습니다. 발견된 그 사람만 종이 되면 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돌아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베냐민만 남기고 열 명은 그냥 가도 됩니다.

22년 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요셉도 구덩이에 던지고 팔아버렸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지금도 베냐민을 남기고 가면서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됩니다. 베냐민이 도둑질을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13절 “그들이 옷을 찢고” 형들이 옷을 찢었습니다. 슬픔과 비통함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데리고 요셉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막내를 홀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달라져 있습니다. 함께 요셉 앞에 엎드립니다.

●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16절)

14절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다가 앞장 섭니다. 과거에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 제안했던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그 유다가 이제 베냐민을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16절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변명할 말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이어서 한 말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이것은 과거 요셉에게 저질렀던 그 죄를 하나님이 지금 드러내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유다는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이 그때 요셉에게 했던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는 묻어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중 하나는 죄의 무게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저지른 일은 오랜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는 사라지지 않고 형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42장에서 형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이미 형들의 양심이 그 죄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죄를 저지르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무게는 긴 시간 동안 사람을 누릅니다. 형들이 오늘 하지 않아도 될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해결되지 않은 죄는 삶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죄를 두려워하며 멀리해야 할 이유입니다.

유다가 계속 말합니다.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베냐민 혼자 종이 되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유다와 형들이 보여준 모습이 있습니다. 베냐민만 남기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돌아왔고, 함께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숙함입니다.

나만 살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은 미성숙함입니다. 함께 짐을 지고, 문제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내가 수고스럽더라도 약한 사람 곁에 서는 것, 이것이 성숙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유다가 그렇게 했습니다. 요셉을 판 유다가 이제 베냐민 곁에 섰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죄를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지른 죄가 오늘까지 그들을 무겁게 했습니다. 죄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드러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함께 짐을 지는 성숙함입니다. 혼자 살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고, 약한 사람 곁에 함께 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