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1-24절 /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26.05.12)

2026.05.12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1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은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감옥에서 그 2년은 요셉에게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요? 유일한 희망이 끊어진 채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2년 동안 쉬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정확한 때에 정확한 방식으로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절 “만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하나님이 움직이신 대상은 바로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애굽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강대국이었고, 바로는 그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반면 요셉은 히브리 출신의 노예요 죄수였습니다. 이 둘의 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요셉 한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장차 이루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최고 권력자를 움직이신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요셉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하나님이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어떤 사람도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 어느 문도 열리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상황도 만드시고 사람도 움직이십니다. 단,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는 같은 날 밤 두 가지 꿈을 꿉니다. 첫 번째 꿈은 나일 강가에서 시작됩니다.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더니 살찐 일곱 암소를 삼켜버렸습니다. 너무 놀란 바로가 잠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었더니 두 번째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가늘고 동풍에 말라버린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렸습니다.

여기서 ‘소’와 ‘이삭’은 그 당시 애굽 사람들의 주요 양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나일강은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섬길 만큼 생명과 풍요의 근원으로 여기던 강이었습니다. 바로는 이 꿈이 나라의 미래와 연결된 꿈이라고 직감했습니다. 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 꾸게 하신 것도 중요합니다. 앞서 요셉도 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한 꿈을 반복하실 때는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라는 뜻입니다.

8절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바로 곁에는 그 나라 최고의 지혜자들이 있었습니다. 꿈을 해석하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 왕의 최측근에 있는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해석은 내놓았겠지만 바로가 이해할만한 해석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꿈 속에 담긴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최강대국의 최고 지혜자들도 하나님이 주신 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의 해석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지혜가 세상 최고의 지혜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동시에 요셉이 이 자리에 서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16절)

아무도 해석하지 못한 상황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나아왔습니다. 9절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여기서 ‘죄’는 2년 전 바로의 진노를 사서 감옥에 갇혔던 불미스러운 일과 동시에 요셉이 간곡히 부탁했음에도 잊고 지낸 잘못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2년 전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꺼냅니다. 자기 꿈을 해석해 준 히브리 청년, 그리고 그 해석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바로에게 했습니다.

바로 입장에서는 히브리 노예 출신 죄수를 부르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4절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니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놓은지라”

여기서 ‘옥’은 히브리어로 ‘구덩이’를 뜻하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채색 옷이 벗겨지고 던져졌던 그 구덩이, 그리고 그 후 갇혀 있었던 이 구덩이에서 요셉이 나온 것입니다.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은 요셉, 구덩이에서 나와 새 옷을 입는 과정은 요셉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15절 “내가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이 말 속에는 의심도 있고 기대도 있습니다. 히브리 죄수 청년을 믿어야 하는지 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16절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억울하게 갇혀 있다가 왕 앞에 나왔으면 먼저 자기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 능력을 드러내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것이 13년의 연단이 만들어 낸 요셉의 신앙이었습니다. 17살에 꿈을 꾸던 소년이 고난의 시간을 거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는 요셉에게 다시 꿈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1-7절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19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와 21절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는 앞부분에 없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바로의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요셉에게는 절망의 시간처럼 느껴졌겠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 내내 정확한 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요셉을 위해 최고 권력자를 움직이십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요셉이 왕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을 높였을 때,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내가 앞서가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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