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19-34절/장자의 명분을 팔라(26.04.15)

2026.04.15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아브라함의 생애가 저물고, 이제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을 거쳐 새로운 세대인 야곱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앞선 긴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훈련하시고 빚어가셨는지를 묵상해 왔습니다. 이제 이삭이 유일한 상속자로서 복을 누리며 평탄한 길만 걸어갈 것 같지만, 성경은 곧바로 이삭의 가정에 찾아온 깊은 시련과, 그 속에서 태어난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누구를 통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23절)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지만, 무려 20년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60세가 되어서야 쌍둥이를 안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처럼 자녀가 없는 이들을 선택하시고 또한 곧바로 약속을 이루어 주시지 않고 이토록 긴 기다림의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인간은 종종 하나님의 약속조차 나의 힘과 능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이 완전히 멈춘 그곳에서, 약속이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성취됨을 알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자녀가 없을 때 아브라함은 하갈이라는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이삭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20년이 지난 60세에 이루어집니다. 오랜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기도했던 20년은 결코 응답 없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이삭은 “왜 약속의 자녀를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동안, 그의 기도는 내 뜻을 관철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자리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은혜입니다. 기도가 즉각 응답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는 가장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랜 기도 끝에 리브가는 쌍둥이를 잉태하지만, 두 생명은 태중에서부터 격렬하게 다툽니다. 불안해하는 리브가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주십니다. 23절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작은 두 생명이지만, 하나님은 ‘두 국민’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언제나 그 연약한 생명을 통해 이루어가실 거대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어지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향해 23절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당연히 장자인 큰 자가 모든 축복과 권리를 이어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크고 강함의 논리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큰 자를 환호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하고 작은 자를 은혜로 택하셔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큰 자이거나 남들보다 탁월해서 선택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격 없는 작은 자인 우리를 일방적인 은혜로 부르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크고 강한 자들이 아닌 소외되고 아픈 작은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34절)

드디어 출산의 때가 되어 붉고 털이 많은 형 에서가 먼저 나오고, 동생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꽉 쥔 채 태어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입니다. 태중에서부터 어떻게든 먼저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을 차지하려 했던 야곱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어떻게든 내 힘으로 타인의 발꿈치라도 딛고 올라서 성공하고, 복을 쟁취해 보려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보게 됩니다.

잔머리가 비상했던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축복을 차지하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사냥에서 돌아와 지친 형 에서의 허기를 이용합니다. 팥죽 한 그릇을 내밀며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장자의 명분’을 요구한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겠다는 야곱의 생각이 기발합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에서의 반응입니다. 32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며 서슴없이 그 귀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맞바꿔 버립니다.

단 한 끼를 굶었을 뿐인데, 지금 당장의 육신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 하나님이 주신 영적 장자의 권리를 헐값에 넘겨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에서는 참 가벼운 사람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훗날 이런 에서를 향해 히12:16절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며 ‘망령된 자’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신분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때로는 목적을 위해 인간적인 잔머리를 굴리는 야곱 같기도 하고, 때로는 당장의 허기를 채우려 귀한 것을 내팽개치는 에서 같기도 합니다. 혹 우리도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피 값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영광스러운 신분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지금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예배가 무슨 소용이고 믿음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세상의 팥죽 한 그릇을 얻기 위해 우리의 거룩한 신분과 은혜를 바꾸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자녀 됨의 특권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오늘 하루, 내 손에 당장 쥐어질 팥죽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잡는 성숙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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