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죽음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은 떠나도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약속을 이어가십니다.
●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5절)
아브라함에게는 사라 외에도 ‘그두라’라는 후처가 있었고, 그녀를 통해 여러 자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수많은 자녀들 사이에서 누가 아브라함의 진짜 후계자가 될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두라의 자식들은 숫자도 많고 세력도 강해보입니다. 본문에 아브라함의 후처 이야기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성경의 흐름으로 보면 사라가 죽은 후에 후처를 얻은 것처럼 생각되지만,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은 때 이미 그는 생산능력이 없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등장하는 ‘그두라’와 자녀들은 아마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지 않다가, 아브라함의 죽음을 앞두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음을 앞두고 아주 단호한 결단을 내립니다. 5절 “자기의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었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은 재산이 아니라, 오직 이삭이 유일한 상속자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이삭이 아브라함을 이을 ‘언약의 유일한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른 자녀들에게 재물을 나눠주고 이삭을 떠나 동쪽으로 가게 합니다. 이삭을 다른 자녀들과 분리시키는 아브라함의 지혜로운 조치입니다.
창세기의 역사는 ‘분리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과 세상 나라 백성이 섞여버릴 때 어김없이 타락이 찾아왔고, 노아의 홍수나 바벨탑 같은 심판이 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훗날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의 싹을 지혜롭게 자르고, 약속의 자손이 세상과 섞이지 않도록 철저히 분리하는 부모로서의 마지막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세상 속에 발을 딛고 살아갑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행동,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거룩한 분리’입니다.
●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9절)
175세의 나이로 아브라함은 기운이 다하여 조상에게로 돌아갑니다. 75세에 부름을 받아 무려 100년의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돌아보면 처음부터 그의 믿음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치기도 했고, 두려움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연약함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흠 많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빚으시고 연단하셔서, 마침내 독자 이삭마저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거장으로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브라함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이나, 가나안 땅 전체를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나안에서 소유한 땅이라고는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내기 위해 헷 족속에게 돈을 주고 산 작은 무덤, ‘막벨라 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억울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평안히 눈을 감습니다. 비록 내 눈앞에서 약속의 완전한 성취를 보지 못했어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루실 것을 굳게 믿고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당장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 너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11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거대한 믿음의 조상이 세상을 떠났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고 이삭에게로 흘러갑니다. 사람은 죽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은 계속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영생’은 단순히 나 혼자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가고, 그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이 내 자녀에게, 그리고 그 자녀의 자녀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가는 것, 이 역시 언약적 관점에서 바라본 영생의 한 단면입니다.
12절부터 이어지는 이스마엘의 족보를 보면 하나님의 또 다른 신실하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스마엘은 언약의 중심부에서 밀려났지만, 하나님은 과거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하셨던 “열두 두령을 낳고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창17:20)는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정확하게 성취하셨습니다(16절). 이삭과 같은 택함 받은 자뿐만 아니라, 언약 밖에 있는 자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넓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때 평생의 붙잡을 수 있는 ‘거룩한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고 있습니까? 나의 무심한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 일상의 가치관이 켜켜이 쌓여 내 가족과 공동체에 깊은 흔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 나의 삶은 세상의 가치관과 얼마나 선명하게 ‘분리’되어 있습니까? 세상 한가운데 살면서도 세속의 욕망에 물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십자가의 푯대를 향해 걸어가는 영적인 결단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처음에는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일지라도, 말씀에 순종하며 묵묵히 걸어갈 때 끝내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내 당대에 모든 기도의 응답과 열매를 보지 못할지라도, 나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힘차게 이어질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굳게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묵묵히 믿음의 씨앗을 심는 복된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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