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7:1-16절/예수님의 기도(26.03.27)

2026.03.2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절)

​요한복음 13-16장까지 예수님의 긴 ‘고별 설교’가 끝이 났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불과 몇 시간 뒤면 사람들에게 끌려가 밤새 고문을 당하시고, 이튿날 아침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됩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 사역을 앞두고 하나님께 직접 올려드린 ‘대제사장적 중보기도’이자 유일하고도 긴 실제 기도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과연 어떤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예수님의 기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5절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6-19절은 남겨질 제자들을 위한 기도, 20-26절은 미래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1절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여기서 ‘때’는 바로 십자가를 지실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곧 ‘영화’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에 ‘영화’라는 단어가 5번이나 반복됩니다(1,4,5). ‘영화’는 인간적인 출세나 성공이 아니라 철저한 희생과 순종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십자가는 수치와 실패로 보이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기에, 그 죽음의 자리가 곧 아들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영광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이 영광입니다.

십자가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은 이 영생의 본질을 명확히 정의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원래 어떤 존재였으며, 죄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고,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일들을 알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의 영생은 죽어서 누리는 영생이 아닌 예수님을 믿을 때 주어지는 영생을 의미합니다. 즉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얼마를 주면 살 수 있을까요? 천하의 그 어떤 재물과 가치로도 결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로 아파하고 낙심할 때가 많지만, 이 구원의 은혜 한 가지만 기억해도 우리는 평생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 “내가 비옵는 것은 …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9절)

​예수님은 이제 시선을 돌려,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고통보다, 거친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에 대한 마음이 훨씬 더 애타고 안타까우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제자들을 비롯한 이 시대 성도들이 꼭 기억해야 할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것’, ‘아버지의 말씀’이 핵심입니다. 제자들은 세상 중에서 예수님께 주신 사람들이며,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고, 아버지의 ‘말씀’을 주셨으며, 제자들은 그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구원자이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9절에서 파격적인 기도를 올리십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우리 주님의 관심과 중보는 오직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즉 주님의 제자요 성도인 바로 ‘우리’를 향해 집중되어 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나를 ‘아버지의 소유’로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세상 한가운데서 나를 눈동자처럼 주목하시며 기도해 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와 감격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처한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떠나가시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악한 세상 한가운데 남겨져야 합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셨기에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제자들도 더 이상 어둠의 세상에 속하지 않은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14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정직하게, 희생하며 살려고 몸부림칠 때 세상은 우리를 환영하기보다 오히려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차라리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빨리 벗어나 주님이 계신 천국으로 가고 싶다는 도피적인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15절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핍박받는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이 치열하고 적대적인 세상 한복판에 서서, 그곳에서 악한 사탄의 권세에 타협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는, 즉 보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처럼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상의 핍박과 환난 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믿음의 공동체로 생명의 빛을 발하는 것, 그것이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영생을 선물로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세상 속에서 고난을 당하고, 현실의 문제들이 우리를 흔들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입니다. 험한 세상 한가운데서 도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 안에 굳게 서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거룩한 승리의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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