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6:16-24절/근심이 도리어 기쁨으로(26.03.25)

2026.03.25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0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나신다는 말씀을 계속하시자, 제자들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이 끝이 아니며 부활과 성령이 오실 것을 약속하시지만, 제자들은 다가올 이별의 충격 때문에 깊은 혼란과 근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처럼 캄캄한 절망 속에 갇힌 제자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날 고단한 삶의 문제로 근심하는 우리를 향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의 약속입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6-19절까지 “조금 있으면”이 7번이나 반복됩니다. 이 말로 인해 혼란이 생겼는데, 여기서 ‘조금 있으면’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때까지 남은 아주 짧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굳이 제자들을 이토록 혼란스럽게 만드시는 말씀을 미리 하시는 것일까요? 만약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일어날 영광스러운 부활과 성령 강림의 계획을 모른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직후에 “이제 다 끝났네”라며 깊은 실망감에 빠져 주님을 완전히 떠나버릴 위험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제 끝났다”며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그렇게 무너지지 않도록,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며 그 뒤에 훨씬 더 놀라운 생명의 일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리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어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쉽게 풀어서 20절부터 설명하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제자들은 곡하고 통곡할 것입니다. 반면 세상은 기뻐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런데 끝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됩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21절 ‘해산하는 여인’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는 뼈를 깎는 극심한 고통을 겪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그 새 생명의 기쁨 때문에 이전의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결코 실패나 절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활이라는 생명을 낳기 위한 거룩한 해산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시는 그 날, 제자들의 애통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흉내 낼 수도 없는 영원한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긴 부활의 기쁨을 맛본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2절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처럼, 이 기쁨은 십자가를 통과한 자만이 누리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세상과 환경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흔들리지 않는 생명의 기쁨입니다.

●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24절)

​이제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기쁨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열쇠를 주십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23절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여기 ‘그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셔서 제자들 안에 거하시는 날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요14:26절). 그러니 예수님께 묻지 않습니다. 대신 기도합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이름으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구하면 주시고 기쁨을 충만케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아무 것이나 구하면 되는가? 아마 본문이 그런 말씀이라면, 즉 무엇을 구하든 주셨다면 우리 삶이 지금과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성도들이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멈춥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신 목적입니다. 요한복음의 전체 흐름 속에서 보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탐욕이나 육신의 편안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로서 세상 속에서 주님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내 힘으로는 그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너무나도 쉽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엎드려 구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완벽한 능력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내 연약함을 인정하며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명을 채워달라고 구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기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앞의 고난과 막막한 현실만 보고 “이제 끝났다”며 쉽게 근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우리를 위해 예비된 더 크고 놀라운 기쁨의 아침, 곧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조금만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성숙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엎드려 담대히 구할 때, 세상의 어떤 환난도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의 충만한 기쁨과 주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능력이 가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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