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47-57절/예수님을 찾는 이유(26.03.10)

2026.03.1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50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생명의 주님이 가장 위대한 기적을 베푸셨건만,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바리새인들에게 달려가 예수를 고발합니다. 이 고발을 접수한 종교 지도자들은 곧바로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지 본격적으로 모의하기 시작합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걱정은 단 하나였습니다. 47절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이들은 한때 예수님께 더 많은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 중의 기적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반대의 결정을 합니다. 이들의 두려움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계속 행하시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게 될 것이고, 결국 반란을 우려한 로마 군대가 와서 자신들을 짓밟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기대하면서도, 로마를 두려워하며 의지하고 있는 아이러니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절대 포기하려하지 않는 몸부림입니다.

이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나서서 결정적인 발언을 합니다. 50절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참으로 “악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철저히 자기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죄 없는 예수님 한 명쯤은 죽여도 괜찮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앞장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할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도 없고, 진리도 없었습니다. 오직 “나의 유익”과 “나의 영광”만이 가장 중요했기에 생명의 주님을 죽이는 일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자기 이익에 도취될 때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가야바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예수를 죽이자고 선동했지만, 하나님은 이 악한 인간의 말조차 선용하셔서 오히려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도구로 만드십니다.

저자인 요한은 가야바의 이 말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51-52절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자녀를 모으는 사건이 되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했으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악한 의도를 도리어 온 세상을 살리는 “대속의 십자가”’로 역전시키십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악조차도 사용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56절)

​가야바의 발언 이후, 이들은 하나가 됩니다. 53절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서 하나가 되고, 본격적으로 행동에 돌입합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은 유대인들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빈 들 가까운 에브라임이라는 동네로 물러가 제자들과 함께 머무십니다. 예수님의 도피는 결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십자가를 지실 ‘하나님의 때(유월절)’를 위함입니다.

마침내 유대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절 전에 자신을 성결하게 하기 위해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무리들은 성전 뜰에 서서 서로 수군거리며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토록 애타게 찾는 목적은 예수님을 믿기 위함이 아닙니다. 57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예수님을 잡기 위함입니다.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유월절의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들 앞에 계시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제거하려는 어리석음을 봅니다. 학자들은 이 장면을 “폭풍 전야의 고요함과 긴장감”이라고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손은 생명의 주님이자 “참된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돌아봅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은 잃어버린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가야바와 종교 지도자들처럼, 내 삶의 평안과 나의 유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가볍게 외면하고, 형제자매를 희생양 삼는 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 유익과 내 영광만을 구하던 이기적인 신앙을 십자가 앞에 못 박게 하옵소서. 인간의 악함까지도 선용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나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