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24-41절/맹인에서 보는 자로(26.03.03)

2026.03.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25절)

​요한복음 9장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예수님께서 실로암 연못에 씻게 하심으로 고쳐주신 표적으로 시작합니다. 눈을 뜬 이 사람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거센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친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먼저 이 사람의 부모를 불렀지만, 부모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사형 선고와도 같은 가혹한 형벌인 출교가 두려워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맹인이었던 자를 두 번째로 다시 부릅니다.

그들이 이 사람을 두 번째 부른 이유는 자기들이 정해놓은 답, 즉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가 아니고 죄인이다”라는 대답을 강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윽박지릅니다. 이는 좋은 뜻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싶은 진실, 즉 예수가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라”는 위협적인 요구였습니다. 평생 앞을 보지 못해 구걸하며 살았던 그에게 당대 최고 권력자인 종교 지도자들의 위협은 엄청난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치료함을 받은 그는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강압에도 위축되지 않고 25절에서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자신이 직접 겪은 부인할 수 없는 은혜의 체험을 바탕으로 굽히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참된 증인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30절)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했는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이 사람은 27절에서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라며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듯 반문합니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미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제자가 되는 길에 들어섰음을 당당히 드러낸 것입니다. 분노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모세의 제자’라 칭하며, 이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비난합니다. 요한복음은 반복적으로 예수님께서 모세가 했던 일들을 완성하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먹인 것처럼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광야에서 목마른 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한 것처럼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십니다. 특히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죽어가는 자들을 살린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죄로 인해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모세를 제대로 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이들은 모세보다 크신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의 상태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억지에 맹인이었던 자는 자신이 아는 상식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반박합니다. 30-33절에서 그는 “창세 이후로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이 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며 확신에 찬 선포를 합니다.

이처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궁지에 몰린 바리새인들은 결국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며 인신공격을 가하고 그를 쫓아냅니다. 그는 진실을 말하면 출교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끝까지 증거하는 담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38절)

자신을 증거하다가 출교를 당해 버림받은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친히 다시 찾아가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35절에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시며, 당신이 장차 십자가를 지고 모든 사람의 구원을 완성하실 분, 즉 ‘인자’이심을 분명하게 계시해 주십니다.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눈앞에 계신 예수님이심을 깨달은 그는 38절에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육신의 눈을 뜬 것에만 머물지 않고, 예수님을 온전한 나의 주인으로 알아보는 ‘영적인 눈’까지 완전히 떠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결론으로 예수님은 39절에서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자신은 죄인이며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무지를 인정하는 자들은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지만, 바리새인들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교만하게 주장하는 자들은 영원히 눈먼 자로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맹인인가”라고 발끈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산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 스스로 성경을 알고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며, 남을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영적 교만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늘 겸손하게 말씀 안에 머물며,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영적인 눈을 매일매일 새롭게 떠가야 합니다. 또한 맹인이었던 자처럼 세상의 위협과 불이익 앞에서도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증거하는 참된 증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