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8-31절 /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26.06.03)

2026.06.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십자가의 도가 …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절)

어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네 파로 갈라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 원인은 고린도 사람들이 세상의 지혜, 철학, 말 잘하는 것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하며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같은 십자가인데 보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 비웃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에 달려 죽은 것이 어떻게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말이냐고 합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미련하고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신비고 은혜고 사랑입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신비가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지혜는 똑똑한 사람이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십자가를 똑똑한 사람만 깨닫는다면, 교회에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만 앉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구원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 지혜로 알 수 없는 십자가를 두고, 오히려 세상 지혜를 교회 안에서 추구하며 갈라졌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19절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바울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세상의 지혜를 무너뜨리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굳이 십자가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구원하셨을까요? 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아무리 똑똑해도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 곧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하는 것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22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누면 능력을 원하는 사람과 지혜를 원하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유대인은 표적, 곧 능력을 구했습니다. 로마의 압제 아래 있던 그들은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강한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철학과 똑똑함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무엇을 전했습니까? 23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능력을 원하는 유대인에게 비참하게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전했고, 지혜를 원하는 헬라인에게도 같은 십자가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었습니다. 자기도 구원하지 못한 무능력한 메시아를 어떻게 믿느냐는 것입니다.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모두를 구원한다는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4절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이 무능력이라 한 것이 진짜 능력이고, 헬라인이 미련하다 한 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고, 우리의 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31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들을 돌아보라고 합니다. 26절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 지혜롭다, 능력 있다 하며 파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는 도토리 키재기처럼 누가 더 낫네 하며 끼리끼리 나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에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도 많은데, 하나님은 왜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27-28절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반대입니다. 세상은 지혜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이유가 29절에 있습니다.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면 “내가 했다”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내가, 누구도 불러주지 않던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1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여기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알량한 지혜와 지위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거들먹거리며 파당을 이뤘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지혜를 추구하지만, 우리는 세상 지혜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 곧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 십자가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고 위대한 지혜인지를 깨닫고 감격하며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십자가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자랑하지 않고 주님을 자랑할 때, 하나님이 그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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