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9절)
죽음을 앞둔 야곱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육신이 노쇠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의 영적인 눈은 오히려 더 밝았습니다. 손을 엇바꾸어 축복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백하고, 죽음 뒤에도 이루어질 약속을 확신합니다. 육신의 눈은 어두웠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선명했던 야곱의 고백이 오늘 본문입니다.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요셉이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데리고 야곱 앞에 왔습니다. 야곱이 묻습니다. “이들은 누구냐” 요셉의 대답이 눈에 띕니다. 9절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내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므낫세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내 고통을 잊게 하셨다”는 뜻이고,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를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두 아들의 이름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요셉은 자녀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내 것인 것처럼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보다 자녀를 우상처럼 섬겨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존재로 바라볼 때, 부모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야곱은 11절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네 자손까지 내게 보이셨도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의 얼굴을 보고, 그 아들의 아들들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 더 놀랍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드디어 야곱이 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오른손이 장자 므낫세의 머리에, 왼손이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닿도록 아들들을 배치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상징하는 손이었고, 반드시 장자의 머리 위에 놓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14절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야곱이 손을 바꾼 것입니다.
요셉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17절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혹시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가 실수하신 게 아닐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9절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영적으로 분명하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말했습니다.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창세기를 읽다 보면 이 패턴이 반복됩니다. 이스마엘보다 이삭, 에서보다 야곱, 르우벤보다 요셉, 므낫세보다 에브라임. 하나님은 세상의 순서를 따르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뛰어나고 강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부르실 때도 세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연약한 열두 사람을 통해 시작된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우리의 뛰어남이 아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중요합니다.
●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15절)
축복 기도 중에 야곱이 고백합니다. 15-16절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세 가지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대대로 함께하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었고, 그 하나님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하나님이 되어달라는 간구입니다. 신앙은 세대를 거쳐 전해집니다.
둘째, 출생부터 지금까지 기르신 하나님입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돌아보니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인도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온 것 같았지만, 하나님이 이끌어 오셨습니다.
셋째,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하나님입니다. 야곱의 인생에는 환란이 많았습니다. 형에게 쫓기고, 외삼촌에게 속이고, 딸이 성폭행당하고,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환란을 억울함으로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환란에서 건져주셨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입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이 환란에서 건져주신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확신할 때 고난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과정이 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21절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 놀라운 고백입니다. 야곱은 한때 눈에 보이는 축복을 얻기 위해 힘썼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성숙시키십니다.
지금 야곱은 애굽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백성의 숫자도 아직 작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확신합니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죽는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후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목자이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이끌어 오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아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확신 위에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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