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12-33절/이삭의 우물(26.04.17)

2026.04.1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12절)

흉년이 든 땅에서 농사를 지어 백 배의 결실을 얻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삭이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그리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26장이 이삭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장입니다. 그런데 이 한 장 안에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을 이삭이 그대로 걷는 이야기,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복을 받으면 삶이 편해질까요? 12절에서 이삭은 ‘백 배의 수확’을 얻습니다. 13절은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창대함, 왕성함, 거부. 이 세 단어 중 하나만 주어져도 감사할 일인데, 이삭에게는 세 가지가 동시에 주어졌습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습니다.

그런데 복을 받으니까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기하여 아버지 아브라함 때 종들이 파놓은 우물들을 흙으로 막아버립니다. 그 지역에서 우물은 생명과 같습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물을 막는다는 건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합니다. 16절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어제는 이삭을 혼내던 왕이, 이삭이 강해지자 이번엔 두려워하며 쫓아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지금 이삭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싸울 수 있는 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떠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팝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파자 ‘샘 근원’이 나왔습니다. 물이 펑펑 쏟아지는 수원이 발견된 것입니다. 건조한 땅에서 우물을 파도 물을 못 만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삭의 종들이 파면 물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데 또 다툽니다. 블레셋 목자들이 이삭의 종들이 판 우물을 빼앗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 이름을 ‘에섹’(다툼)이라 부르고 또 떠납니다. 다음 우물도 빼앗겼습니다. 이름을 ‘싯나’(적대)라 부르고 또 떠납니다. 포기하고 떠나고, 또 포기하고 떠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참 바보같고 답답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우물을 팠을 때 드디어 다툼이 없었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넓음)이라 부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22절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다투지 않고 피하고 또 피하면 점점 좁아질 것 같은데, 하나님은 오히려 더 넓은 지경으로 이삭을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십니다.

●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28절)

브엘세바로 이동한 이삭에게 하나님이 밤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24절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이삭이 사람들의 공격 가운데 불안하고 두려웠을 그 시점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이삭이 다투지 않고 계속 이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 그 확신이 이삭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포기한다 해도, 내가 이 우물을 내어준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괜찮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삭은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종들은 또 우물을 팠습니다. 또 물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삭을 쫓아냈던 아비멜렉 왕이 이삭을 찾아옵니다. 이삭이 묻습니다. 27절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아비멜렉의 대답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28절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이방인이 알아봤습니다. 이삭이 포기하고, 떠나고, 또 파고, 또 물을 얻는 과정을 지켜본 그들이 고백한 것입니다. 이삭처럼 살아서는 세상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고,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세상의 방향과 반대되는 삶을 살았는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때 세상이 인정합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다” 그리고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맹세를 맺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맹세를 맺고 돌아간 그날, 이삭의 종들이 또 우물을 팠고 또 물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그 이름을 ‘세바’(맹세)라 불렀고, 그곳이 오늘날까지 브엘세바라 불립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시기와 다툼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이삭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시기 당하고 빼앗기면 싸워서 되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것 같고 좁아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결국 더 넓은 지경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움켜쥐려 할수록 우리의 지경은 좁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우리를 르호봇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넓어지는 삶, 그 넓어짐은 단지 물질적 풍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구나”를 알아보게 되고, 그들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르호봇의 은혜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며 믿음과 순종으로 우리의 우물을 파는 한 날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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