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31절)
예수님은 저녁 식사 중 제자들을 발을 씻겨 주셨고, 가룟 유다에게 떡을 건네주며 주님 품으로, 생명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끝내 그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 욕망을 좇아 어두운 밤 속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유다가 떠난 직후 시작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오늘 본문부터 17장까지를 예수님의 ‘고별 설교’라고 합니다. 죽음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에서, 남겨질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쏟아내시는 장면입니다.
십자가의 참혹한 고통과 배신이 눈앞으로 다가온 이 순간,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습니다. 31절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십자가의 죽음을 실패와 수치가 아니요, 도리어 ‘영광’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완성되는 자리이며,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어주는 그 십자가의 희생과 순종을 통해서만 참된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그 죽음의 자리가 곧 아들 예수의 영광이요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영광’은 무엇입니까? 어쩌면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성공해서 세상의 박수를 받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여주신 참된 영광은 세상의 영광과 다릅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아져서, 타인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이 보여주신 영광입니다. 내가 죽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33절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다가올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34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가장 위대한 명령이 바로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구약에도 나오는 계명입니다. 레19:18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부르실까요? 사랑의 ‘기준과 차원’이 완전히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네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를 뛰어 넘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가 사랑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제자들의 냄새나는 더러운 발을 손수 씻겨주셨고,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전부인 생명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를 대적하고 원수 된 자를 위해서도 기꺼이 목숨을 내어주는 것, 남을 밟고 일어서는 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종의 자리로 내려가 섬기는 것, 바로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라는 위대한 명령입니다.
그래서 35절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하는 방법은 우리가 얼마나 종교적인 지식이 많으냐, 혹은 얼마나 대단한 기적을 행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참된 표지는 오직 십자가를 닮은 ‘사랑’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핍박 속에서도 교회로 나왔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전도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까?” 핍박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여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8절)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몬 베드로입니다. 그는 36절에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더니, “지금은 따라갈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발끈하여 이렇게 장담합니다. 37절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베드로의 이 호언장담은 결코 거짓말이나 위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 베드로의 열정이 얼마나 연약하고 한계가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3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의 문제는 십자가의 길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영광의 길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간적인 의지와 결단력만으로 얼마든지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길은 인간의 육신적인 열심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힘을 의지했기에 처참하게 실패하고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오직 십자가에서 완성된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에만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참담한 실패를 미리 예언하심으로써, 훗날 그가 자신의 연약함을 철저히 깨닫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을 붙드는 참된 제자로 빚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내 뜻을 꺾고 자기를 부인하여 생명을 살리는 십자가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이름이 높아지는 세상의 썩어질 영광에 목말라 있습니까?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 목숨 버리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합시다. 그 사랑이 잣대가 되어,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성도들, 그리고 이웃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기꺼이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삶을 살아냅시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할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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