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4절)
3장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최고의 사람인 니고데모를 만나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스스로 찾아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4장 예수님은 최하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십니다. 이 여인은 문제가 있지만 예수님을 찾아갈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인을 찾아오십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며 여인을 만나는 배경은 1절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면서 세례를 베푸시고 제자를 삼으십니다. 그런데 2절은 세례를 예수님이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베푼 세례는 회개의 세례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를 베푸시는 일보다는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전할 제자들을 만드시는 일에 집중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 삼는 활동과 제자들이 세례 베푸는 일들을 바리새인들이 주목합니다. 자칫 충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예수님은 판단하시고 유대지역을 떠나 예수님 사역의 중심지인 갈릴리를 향해 가십니다. 그 과정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십니다. 4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고 하는데 원어로 보면 “해야만 한다”는 당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마리아 통과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아신다고 강조했는데, 예수님께서 인생의 목마름으로 고통하는 한 여인을 아시고 만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사마리아로 향하고 계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부정한 지역이라고 생각해서 길이 좀 멀어도 우회해서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향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깜짝 놀랍니다. 9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의 관심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심지어 인생의 문제로 손가락질 당하던 사마리아 한 여인에게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당대 최고의 사람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듯, 예수님께서 가만히 있어도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듯 여인을 찾아오십니다. 저자 요한은 이런 순서의 기록을 통해 이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라는 지역에 도착하십니다. 그곳은 6절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도착하신 시간이 6절 하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고 하는데 우리 시간으로 하면 낮12시입니다. 이 시간은 중동지역의 뜨거운 햇빛 때문에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고 쉼의 시간을 갖습니다. 물을 길어도 오전이나 오후 선선한 시간에 나옵니다. 그런데 여인은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우물가를 찾은 겁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나왔습니다. 그 이유가 내일 본문에 나옵니다. 한마디로 이 여인은 인생의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절)
예수님께서 첫마디를 던지십니다. 7절 “물을 좀 달라” 탁월한 선택입니다. 예수님과 여인의 공통점이 목마름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목마름입니다. 여인은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육신의 목마름은 물을 마시면 해결되지만 과연 영혼의 목마름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우물”, “물”, “생수”입니다. 다해서 14번 정도 나옵니다. 무엇을 보여주냐면 이 세상에는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겠다는 것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것만 있으면 내가 만족하고 행복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 물질, 지위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절대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극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만족과 기쁨은 과연 어디에서 올까요? 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생수’가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생수’는 ‘영생’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존재가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는 겁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살아있으나 죽은 겁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집니다. 만약 영생을 돈을 주고 사야한다면 얼마를 주어야 할까요?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우리 유한한 생명을 바쳐도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고, 지금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은혜요 감사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어가는 백성들을 위해 장대에 놋뱀을 매달고 쳐다본 자들은 생명을 얻은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겁니다. 이것이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여인도 니고데모처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13절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그렇습니다. 다시 목마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물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영생의 샘물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올 수 없는 목마른 한 여인을 찾아가셔서 만나주시고 생수를 주신 예수님, 과연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 낮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물은 많지만 생수가 없는 시대 생수되신 예수님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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