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1절)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십니다. 장소가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11절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라고 합니다. 혼인 잔치 집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참석합니다. 그런데 잔치 집에 문제가 생깁니다. 3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결혼풍습은 7일간 진행이 되었고, 결혼식의 기쁨으로 유지하는데 포도주가 중요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신랑과 신부뿐만 아니라 가족의 불명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이 창세기와 연결되었다고 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것은 하나님과의 하나 됨이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하나 됨을 깨뜨리고 이후 사람에게는 슬픔과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3장부터는 그런 사람의 예를 하나씩 들어 설명합니다. 당시 최고의 석학인 니고데모, 4장은 당시 가장 낮은 지위의 여인인 수가성 우물가여인, 5장은 베데스다의 38년된 병자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져 슬픔의 장소가 된 곳을 기쁨으로 바꿔주십니다. 죄로 인해 절망에 빠진 모든 인생에게 예수님은 잃어버린 기쁨, 생명을 회복시켜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표적이 혼인 잔치라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3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이 문제는 주최측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예수님의 어머니가 부탁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가까운 친척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탁은 기적을 행하라는 요청이라기 보다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요구입니다. 어머니로서 자연스러운 부탁일 수 있지만, 마리아의 요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겁니다. 먹고사는 문제, 정치적인 억압 등을 해결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절처럼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중에 기적을 행하시지만 분명하게 자신이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내 때”를 위해 왔고, 그때는 인간의 일상적인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문제,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실 그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삶의 목적을 선명하게 아시고 그때를 향해 나가십니다. 어머니를 향하여 ‘여자여’라고 부르는데 헬라어로는 존칭으로 부르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5절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잉태하고 태어날 때 천사들이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절)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데 방법이 6절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두세 통은 약 100리터의 양입니다. 이런 돌항아리가 여섯 개가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돌항아리의 용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사용하는 항아리입니다. 유대인들은 정결 예식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돌항아리가 비어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당시 이스라엘 종교가 내용과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겁니다. 그런 신앙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짐을 지우는 신앙일 뿐입니다. 그곳을 예수님은 물로 채우시고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지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식만 남은 죽음의 종교를 생명과 기쁨의 종교로 바꾸실 것입니다.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하니 아귀까지 채웁니다. 그리고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물을 채우는 것까지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물을 떠서 포도주를 기다리고 있는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는 것은 순종하기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연회장은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자칫 모욕과 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인들은 순종해서 가져다줍니다. 그 결과 9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연회장이 놀랍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첫 표적의 목적입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을 ‘영광의 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부분인 1-12장까지는 이런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고, 13-21장까지는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서 영광스럽게 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집중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 표적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알고 따르고 있지만 점점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합니다. 정결예식 돌항아리처럼 습관화 형식화되어 있지는 않는지 생각합니다. 물로 채워지고 그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듯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기쁨과 생명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끊이지 않는 우리 삶의 문제들을 변화시키고 해결하시는 주님께 맡깁시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