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0:1-18절/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26.01.29)

2026.01.2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2절)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이 구체화되었습니다. 18:10절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지 25년여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제대를 앞두고 있으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 가정이 지금 그래야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다시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수는 이미 12장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왔는데 기근을 만나자 애굽으로 내려가며 두려움에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합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궁으로 불러들이는 위기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큰 재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1장은 드디어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아브라함의 실수는 하나님의 약속이 시작된 직후에,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성경 저자는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사실을 강조합니다. 15장 횃불 언약을 통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책임지시고 언약을 이루십니다. 사람은 위기를 만들지만 하나님은 위기를 해결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과정을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장해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수합니다. 실패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붙잡으시고 이루어가십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데려갑니다. 지금 사라의 나이가 90인데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데려갔다는 것이 의아합니다. 어찌 되었든 위기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긴급하게 개입하십니다.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3절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아무것도 몰랐던 아비멜렉은 자신이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행한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비멜렉의 사라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7절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아브라함이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집의 여인들을 치료하셔서 출산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앞에서는 롯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19:29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롯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점점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참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땅에 살던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셔서 온 세상을 향한 스스로 꿈꿀 수 없는 비전을 주시고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며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부르신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10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책망했듯이 아브라함을 책망합니다. 이 일로 자칫 아비멜렉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까지 위기를 겪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묻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11절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8절 하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신뢰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했다면 어디에 있든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으면 사람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책망에 아브라함의 대답이 계속되는데 13절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고 합니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이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두 번 이상 이런 일들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12장에서 아브라함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리케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방패와 상급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실수를 통해서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전과 다른 말과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문제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점검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제 신앙을 시작하신 분들이 세상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왔음에도 여전히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오늘 본문처럼 한 가정과 인생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장에서도 실수를 통해 재물을 얻은 것처럼 아비멜렉도 양과 소와 종들을 아브라함에게 줍니다. 또한 16절 “은 천 개”를 줍니다. 많은 액수입니다. 아비멜렉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물질로 보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비멜렉을 위해 아브라함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 출산케 하십니다.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크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새로운 환경이나 두려운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고, 이전과 다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과 행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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