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9:18-29절/보고 알린 결과(26.01.13)

2026.01.1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22절)

​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그런데 18절은 함을 소개하면서 특이하게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가나안이 계속 반복됩니다(18,22,25,26,27). 오늘 사건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절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하나님은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고 노아와 아들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1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 같은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 노아입니다. 20절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라고 하는데 여기 “농사를 시작하여”가 원어로 보면 “땅의 사람”(하아다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담이 먹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를 먹고 벌거벗은 수치를 느낀 것처럼 노아는 마시고 취하면 안 되는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누워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창세기 3장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노아의 모습이 말해주는 것은 홍수심판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죄가 계속해서 확산되고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저주하는 데까지 나갑니다.

노아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의아합니다. 6:8-9절은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당시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홍수 이후 그는 성령 충만한 삶이 아닌 술에 취한 삶을 살아갑니다. 왜 그랬는지 성경이 설명하지 않지만, 홍수 이전에는 영적 긴장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만들고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데 심판 이후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맺어주면서 영적 긴장감이 사라지고 그 틈새를 포도주로 채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노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긴장하며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를 지켜주는 방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힘들어도 하나님을 감당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다른 길로 가지 않게 합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있는 것을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보게 됩니다. 22절은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라고 하는데 여기 “보고”가 원어로 ‘라아’인데 “자세히 관찰하다”의 뜻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목하여 본 것입니다. 또한 “알리매”도 신이 나서 떠벌린 것을 의미합니다. 경건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주목하여 보고 떠벌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줍니다. 23절은 다시 한번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고 반복합니다. 함의 행동과 대조하고 있습니다. 창3장에서 아담과 하와를 범죄하게 하고 그들이 벌거벗은 수치를 느끼게 한 것이 뱀이요 사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담과 하와에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시면서 수치를 가려주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 함의 행동은 단순한 고자질 정도가 아니라 사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에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이 갈라진 것처럼 노아의 아들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람과 사탄의 사람이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26절)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일어났던 이야기를 듣고 저주를 합니다. 25절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잘못은 함이 했는데 저주는 아들 가나안이 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문제의 시작이 가나안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즉 함이 보기 전에 가나안이 할아버지의 수치를 보았고 그것을 아버지 함에게 알려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성경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 창3장과 연관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창3:15절은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신 내용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도 잘못은 뱀이 했는데 뱀과 뱀의 후손이 저주를 받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대결이 일어날 것이고 여자의 후손이 승리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저주가 함의 아들과 후손에게 임합니다.

그렇다면 이 저주는 미래를 내다보게 합니다. 여자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통해 사탄의 후손이 가나안땅이 정복되고 그들이 노예가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을 통해서 사탄이 완전히 패배할 것을 말하는 겁니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죄는 계속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세상 향한 구원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승리하십니다. 그것을 미리 알려주시고 이루어가십니다.

세 아들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26-27절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야벳은 창대하게 됩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노예가 됩니다. 야벳은 창대하게 되지만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셈이 가장 복된 삶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전히 이 시대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경건했던 노아의 술취함을 보면서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읍시다. 또한 누군가의 허물을 보고 알리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고 기도해주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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