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1절)
미가 선지자는 1:1절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와 남유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남유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멸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렇다면 지금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앞두고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경고를 듣느냐 듣지 않느냐가 이들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셨던 죄악은 우상숭배입니다. 그것을 1:7절에서는 “음행의 값”, “기생의 값”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나라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위험한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백성들을 향해야 하는 마음이 우상을 향하고 자신을 향할 때 억압과 착취가 일어나고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런 죄악은 가진 자, 힘있는 자들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1절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우상에 빠진 백성들이 늘 생각하는 것은 죄와 악을 꾸미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것입니다. 연약한 백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들에게 힘과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배달 노동자들이 과로로 세상을 떠나는 것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도 로비를 위해서는 수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 시대 거대 기업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2절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탐하여 빼앗고, 탐하여 차지하며 강탈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토지는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함부로 빼앗아서도, 팔아서도 안 됩니다. 만약 부득이하게 팔았다면 희년이 되면 반드시 다시 돌려주어 회복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탐하여 빼앗습니다. 집과 사람들 그리고 산업을 강탈하는 것은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출20:17절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말씀이 없습니다. 욕망으로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멈추게 하십니다. 재앙을 계획하시고 내리십니다. 3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는데, 백성들의 목에 굴레를 씌웠는데, 이제는 자신들의 목에 하나님께서 굴레를 씌우십니다.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들이 강탈한 산업을 하나님께서 이제는 다른 사람이 강탈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들이 빼앗은 밭을 패역자들의 손에 넘기실 것입니다. 자신들이 백성들에게 주었던 고통을 그대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밭과 산업은 다시는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작은 생각, 작은 행동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좋은 생각을 심고, 사랑의 생각을 심고 그것이 아름다운 행동으로 이어지는 매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12절)
그런데 백성들은 선지자의 경고에 이렇게 반응합니다. 6절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그런 예언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7절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하겠느냐”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는 의미는 성경에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급하게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리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알면서 듣고 행해야 할 말씀은 외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일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께서 지금 심판을 경고하신다면 그동안 오래 참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렇게 뻔뻔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다시 설명하십니다.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백성을 보호하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방의 포악한 대적들처럼 백성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들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이 부녀와 어린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들은 선지자의 바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자들의 거짓에 귀를 기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음에도 안일하다, 평안하다, 전혀 문제없다고 예언하며 백성들로 무감각하게 멸망의 길을 걷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할 때 말씀이 우리를 찌르고 부담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묵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복과 관련된 메시지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바른 신앙의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찌르는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임을 기억하고 힘들지만 말씀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완전한 끝을 위함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려고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징계의 시간이 지나면 12절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13절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시 모으시고 선두에 서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생각들이 우리를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를 통해 이루어가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작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때론 불편하고 부담이 되지만 마음에 새기고 순종할 때 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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