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6:15-7:4절/하나님께서 이 역사를(25.11.26)

2025.11.26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15절)

​성벽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대적들의 공격이 집요했습니다.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지게 하고 제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벽 공사가 마무리됩니다. 그 기간이 52일이었다고 합니다. 약140년 동안 무너져있던 성벽이 단기간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16절 하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있지만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이 일에 대해서 느헤미야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보다 더 처참히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워 각자 맡은 부분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완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그리고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능력의 하나님과 함께하므로 이룬 일입니다.

그러자 16절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절대 이루지 못하리라 확신했습니다.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방해하고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완공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대적들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인정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누군가가 꿈을 꾸며 협력해서 하나님과 함께 그 일을 이룰 때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렇게 꿈꾸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벽 완공의 기쁨 가운데도 여전히 문제는 있었습니다. 유다의 귀족들이 도비야라는 대적과 동맹하고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일부의 귀족들은 느헤미야와 유다의 상황을 도비야에게 알려줍니다. 한마디로 첩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도비야가 대책을 귀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들의 동맹은 결혼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2:10,19절은 도비야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이방인입니다. 율법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합니다. 우상숭배의 위험성 때문입니다.

이미 에스라서9-10장에서는 이방인과의 결혼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스9:2절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이런 죄악에 방백들과 고관들이 앞장섰습니다. 이에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으로 예루살렘에 모이게 한 후 스10:11절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고 명령하였고 백성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내부와 외부의 문제 중심에 귀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와 지위를 주신 것은 느헤미야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임에도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적들과 손을 잡고 느헤미야를 공격하고 하나님의 일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서 힘들었지만 연약한 많은 백성들이 하나되어 성벽 공사를 완공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특별한 몇 사람을 통해서가 아닌 이름 없이 헌신하는 많은 이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3절)

​성벽이 건축되어 마지막 과정으로 문짝을 답니다. 그리고 7:1절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하는데, 문지기, 노래하는 자들,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성전과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성벽을 완성하고 세웠다는 것은 성벽 재건의 일차 목적이 성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은 아무나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성벽이 없을 때는 성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부로 가까이했을 것입니다. 이제 성벽을 세워 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회복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바른 예배여야 함을 알게 됩니다. 또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성벽을 세우듯 방해하는 것을 막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순위를 예배에서 빼앗아가는 것이 있다면 막아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면 벽을 세워야 합니다. 지켜야 할 것들을 잘 지켜나갈 때 복된 인생이 됩니다.

성벽이 세워지므로 예루살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이곳을 다스리도록 하나니와 하나냐를 세웁니다. 하나니는 1장에서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소식을 전한 형제입니다. 하나냐를 소개하면서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난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을 지키는 일은 3절 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고 합니다. 성벽을 건축할 때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완공이 되었습니다. 지키는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모든 성벽을 지킬 수 없지만 각자 맡은 부분을 성실하게 지킬 때 결국 성을 온전하게 지키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을 감당할 때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때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이나 비난 혹은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성문을 언제 열고 닫아야 할지 알려줍니다. 해가 높이 뜬 후 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닫으라고 합니다. 어둠을 틈타 누군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4절은 예루살렘 성읍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성읍은 크지만 주민이 적고 집도 아직 건축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꿈꾸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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