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14절)
아마샤는 모세의 율법을 기준으로 행동했던 왕입니다(4절). 또한 전쟁을 앞두고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능기 돕기도 하시고 능기 패하게도 하시는 하나님, 내려 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이런 아마샤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승리 이후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14절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고 합니다.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승리한 왕은 패전국의 신상을 전리품으로 가져오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요소를 없애기 위해 신상을 가져오지 말고 깨뜨리고 불사르라고 하셨습니다(신7:5절). 그런데 아마샤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지 않고, 우상을 가져와 자기 신으로 경배하며 섬깁니다.
아마샤가 왜 이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했는지 이유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에돔 사람들의 우상이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탐스러웠으며, 복을 줄 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문제는 하나님은 전쟁에서는 승리는 주시는 분이지만,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는 다른 신을 섬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나라의 부강과 풍요를 위해서 우상을 가져와 섬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이유든 심각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십니다. 곧바로 징계하지 않으시고 바른 길을 알려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선지자의 설명은 극히 상식적입니다. 이방의 신이 그들의 백성을 아마샤의 손에서 구원하지도 못한 무능한 신인데, 그런 신을 섬기며 우상에게 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맞아 죽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라고 협박합니다. 얼마 전 하나님의 사람 이야기에 순종했던 아마샤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왜 아마샤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19절은 이스라엘 왕인 요아스의 입을 통해 알려줍니다.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교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잘 될 때가 더 위험합니다. 교만한 자들의 특징은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16절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20절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않고, 이스라엘 왕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조언도 듣지 않습니다.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도 그랬습니다. 대제사장인 여호야다가 죽고 나서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은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를 감동시켜 생명의 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듣지 않고 사람들을 시켜 죽입니다. 그런 요아스를 하나님은 감찰하시고 신원하셔서 반역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합니다. 그런데 아마샤도 동일한 길을 걷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생명의 길, 형통의 길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잘 듣고 순종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19절)
교만한 아마샤는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에게 사람을 보내 전쟁을 선포합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서, 신하들하고는 상의해서 전쟁을 결정했습니다. 어제 본문에 나왔듯 북이스라엘 용병들이 돌아가면서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한 것에 대한 보복 전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을 보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입니다. 북이스라엘이 훨씬 강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결과가 뻔한 싸움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예화를 들어 전쟁을 만류합니다. 남유다를 가시나무에, 북이스라엘을 백향목에 비유하면서 가시나무가 백향목에서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레바논 들짐승들이 가시나무를 짓밟을 것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고, 상대도 안 되는 싸움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만한 아마샤는 듣지 않고 전쟁을 실행합니다. 그 이유를 20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고 합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아마샤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상을 숭배하는 아마샤를 대적의 손에 넘기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마샤는 8절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유다는 패배하여 도망하고 아마샤는 사로잡힙니다. 북이스라엘 군대는 예루살렘까지 진격해서 성벽 400규빗을 헐어버립니다. 200m의 성벽이 사라진 것은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사라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의 기물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기고 사람들로 포로로 끌려갑니다. 교만한 왕이 벌인 무모한 전쟁의 결과입니다.
25-28절은 아마샤의 마지막을 기록합니다. 특이한 내용은 북이스라엘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아마샤는 15년을 생존합니다. 이것은 은혜이며 하나님이 주신 회복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샤로 돌이켰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 아마샤는 27절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아버지처럼 반역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반역이 일어난 시점을 “아마샤로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라고 합니다. 24:20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마샤는 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고 유다 성읍에 묻힙니다. 그의 죽음이 영광스럽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끝이 납니다.
잘 될 때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겸손해야 합니다. 또한 안 될 때도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조언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특히 매일 묵상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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