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24:17-27절/신원하시는 하나님(25.10.13)

2025.10.1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17절)

​요아스 왕에게 대제사장인 여호야다는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어린 요아스를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냈으며 6년 동안 성전에서 안전하게 성장하게 했습니다. 요아스가 7살이 되던 해, 아달랴의 통치에 반역을 일으켜 요아스를 왕의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어린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지도 아래 바알 산당을 타파하고 성전 제사를 회복합니다. 특히 요아스는 오늘 본문 27절에서도 언급하는 것과 같이 성전을 보수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24:2절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라고 합니다. 14절도 그렇습니다.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는 바른 길을 걸었는데, 죽은 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17절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로 시작합니다. 여호야다가 죽자 유다 방백들이 왕을 유혹해서 자신들의 말을 듣게 합니다. 그 내용이 18절인데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돌이켜 우상을 숭배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전 아달랴의 통치 아래서 우상 숭배하며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요아스가 왕이 되고 여호야다가 실권을 행사하자 숨죽이고 있던 자들이 이제 여호야다가 죽자 세력을 모아 이전의 영광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전에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요아스가 우상숭배가 하나님 앞에 죄악인 줄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쉽게 방백들의 유혹에 넘어갔을까입니다. 어렸던 요아스는 당연히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6절은 여호야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이런 여호야다를 따라 요아스는 하나님과 성전을 사랑하는 통치를 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이 실권을 행사하기를 원했을 것이고, 실권을 잡았던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사람들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의 신앙은 스스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바른 기준을 세우지 않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사람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전에는 여호야다를 따르는 것이 유익이었고, 이제는 우상 숭배하는 방백들과 함께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을 통해서만 신앙 생활하는 것의 위험성이 여기 있습니다.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지 못하고, 내 이익과 편리를 따라 행동하는 겁니다. 이것은 심각한 죄로 이어집니다.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22절)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유다에 진노를 쏟으십니다. 또한 선지자를 보내사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이들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 중 하나가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입니다. 스가랴가 전한 말씀은 이렇습니다. 20절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유다가 형통하지 못한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다를 하나님도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버리심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는 이어지는 요아스의 죽음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스가랴를 이들은 죽입니다. 그것을 최종적으로 허락한 사람이 요아스 왕입니다. 스가랴를 죽은 장소가 21절 “여호와의 전 뜰 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장소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요아스는 함께 해야 할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또한 들어야 할 말씀은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결과가 실패입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22절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감찰하시고 신원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우상숭배의 결과 아람 군대가 유다를 쳐들어옵니다. 가장 먼저 23절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라고 하는데, 17절은 요아스를 우상숭배로 이끈 자들이 유다의 방백들이라고 했는데 이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합니다. 24절은 전쟁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라고 합니다. 아람 군대는 적고, 유다 군대는 심히 큰 군대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에 부강함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에 대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아람의 적은 무리에게 패배를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넘기신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아무리 이스라엘 군대가 적어도 수많은 적군들을 하나님과 함께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수많은 군사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 전쟁에서 요아스는 크게 부상을 당합니다. 그런 요아스를 신하들이 반역하여 죽입니다. 그 이유를 25절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 스가랴를 죽였는데, 그 대가로 죽임을 당합니다. 또한 25절 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왕이지만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16절에서 여호야다를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라는 말씀과 대조를 이룹니다. 신실했던 여호야다는 왕이 아니었지만 왕의 묘실에 묻히고, 요아스는 왕이지만 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합니다. 요아스의 신실하지 않음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아스의 시작과 끝이 다릅니다. 스스로 말씀을 통해 신앙의 기준을 바르게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요아스와 유다를 실패로 이끈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형통하지 못한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하는 삶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또한 변하지 않는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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