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5절)
르호보암에 이어 아들 아비야가 남유다 왕이 됩니다. 3년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2절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미가야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11:21-22절에서는 아비야의 어머니를 “압살롬의 딸 마아가”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아들”을 “손자”로, “딸”을 “손녀”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딸이 있는데(삼하14:27절), 다말이 우리엘과 결혼해서 낳은 딸이 아비야의 어머니인 미가야(마아가)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비야가 했던 일 한 가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북이스라엘 여로보암과의 전쟁입니다. 먼저 아비야가 전쟁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군대의 숫자는 남유다가 40만명, 북이스라엘의 80만명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미 승리가 정해진 듯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전쟁을 앞두고 아비야가 산에 올라 북이스라엘과 여로보암을 향해 했던 연설입니다. 먼저 ‘소금언약’을 거론합니다. ‘소금언약’은 파기할 수 없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자기 주를 배반”했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여로보암이 반역자라는 사실을 부각시킵니다. 또한 반역자 여로보암과 함께 한 자들이 난봉꾼과 잡류들이라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비야의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다릅니다. 여로보암을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문제는 여로보암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주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왕상11:38절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과 같은 견고한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합니다.
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음에도 어기고 통치를 시작하자마자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이유는, 절기가 되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옵니다. 왕으로서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혹시나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떨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그곳에서 제사하도록 합니다. 그러니 온전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내려옵니다. 그러자 아무나 돈만 내면 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잘못된 출발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북이스라엘 역사 내내 문제가 됩니다.
여로보암은 문제가 있고 불안할 때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맡기지 않고 내 생각과 세상의 방식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과 같은 실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18절)
반면 아비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0절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가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워진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매일 드리는 번제와 진설병, 등잔대 분향 등을 통해 여로보암처럼 인간의 생각과 편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과 말씀에 순종합니다. 12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이 부분이 역대기를 읽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하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불안하고 문제가 가득한 현실에서 사람의 생각과 편리를 따라 행동하면 안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일보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중요합니다.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3절을 보면 남유다는 군사의 숫자로도, 작전에서도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복병을 보내 앞뒤로 포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제사장들은 나팔을 붑니다. 그러자 15절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 16절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시고 넘기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제 본문 12:5절 하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르호보암의 교만과 우상숭배를 하나님은 애굽왕 시삭의 손에 넘겨 깨닫게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남유다 아비야의 군대 손에 넘겨 깨닫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필패의 길입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반면 18절 하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의지할 때 승리합니다.
이 전쟁의 결과 여로보암은 강성하지 못하고 결국 죽습니다. 반면 아비야는 점점 강성합니다. 그리고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며 그 땅에 10년 동안 평안이 있었습니다.
불안하고 문제가 있을 때 내 생각과 감정,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결과를 책임져 주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의지할 때 승리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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