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5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때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징계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열방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손길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벗어나 악을 행할 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온 땅의 통치자이십니다. 그래서 본문은 서쪽 블레셋, 동쪽 모압과 암몬, 남쪽은 구스 마지막으로 북쪽은 앗수르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블레셋은 다섯 도시가 연합해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4절 “가사는 버림을 당하며 아스글론은 폐허가 되며 아스돗은 대낮에 쫓겨나며 에그론은 뽑히리라” 가드를 제외한 네 도시가 버림을 당하고 폐허가 되며 쫓겨나고 뽑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우시기도 하시며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학자들은 여기 사용된 단어들이 버림받은 여인을 표현하는 단어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은 남편인 하나님을 떠난 아내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왜 심판을 당하는지 다른 나라들처럼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5절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라는 말씀을 통해서 보면 이들은 이스라엘이 진멸했던 가나안 사람들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들이 멸하여 주님이 없게 할 것이며 해변은 풀밭아 되고 양을 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 땅이 누구에게 주어진다고 하냐면? 7절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고 합니다. “남은 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여기만 아니라 9절 모압과 암몬에 대한 심판에서도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 백성의 남은 자”, “나의 남은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2:3절에서 말씀하셨던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자소수의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정신을 따라 포악과 거짓으로 살아가며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갈 때,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내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회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분명합니다. 다수의 길, 넓은 길이 아닌 소수의 길, 좁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15절)
이어 모압과 암몬에 대한 심판입니다. 심판의 이유는 8절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비방하고 조롱했습니다. 또한 교만하여 국경을 침범하였습니다. 이것을 10절 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하고 교만하여 졌음이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무시하고 비난했습니다. 거만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조롱과 비난의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훼방과 교만을 보셨습니다. 갚아주십니다.
성도는 누군가를 함부로 조롱하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하고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실족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소중하듯 그들 역시 소중합니다. 비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대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니 성도는 조롱과 비난 대신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야 합니다. 훼방 대신 하나됨을 이루어야 하며 교만 대신 겸손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모압과 암몬을 불과 유황으로 심판받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만드시겠다고 합니다. 황폐하게 됩니다.
남쪽으로는 구스를 심판하십니다. 가까이 있는 나라들보다 멀리 있는 구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2절 “구스 사람들아 너희도 내 칼에 죽임을 당하리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북쪽 앗수르를 심판하십니다. 화려하고 번성했던 도시는 사막같이 메마르고 짐승들의 소굴로 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앗수르가 심판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5절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기쁨의 성이요 염려 없는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쁨과 염려 없음이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짓누르고 탈취해서 얻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기쁨과 염려 없음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이들의 문제는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성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파괴했습니다. 나만, 우리 가정만, 내 자녀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앗수르를 하나님은 황폐하게 하며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결국 나를 황폐하게하고 공동체를 황폐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참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갈 때 오히려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점점 자기 중심성이 강화되는 세상에서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섬기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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