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5절)
스가랴가 본 첫 번째 환상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집이 건축이 되고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여 새롭게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일을 이루실 것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십니다.
본문은 세 번째 환상입니다. 측량줄을 든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측량줄은 두 가지 기능을 합니다. 우리가 묵상했던 계21:15절을 보면 천사가 새 예루살렘을 측량하기 위해 금 갈대 자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 측량은 새로운 건설을 위한 측량입니다. 그런데 암7:7-9절에는 “다림줄”이 나오는데 이 다림줄은 경건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내리신 줄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측량줄은 새로운 건설을 위해 예루살렘을 측량하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천사가 나타나 예루살렘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4절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사람과 가축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벽을 두를 수 없을 정도로 큰 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을 지키고 보호할 것인가? 5절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친히 불로 둘러싼 성벽이 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합니다. 당시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은 성벽이 무너지고 없습니다. 이들의 마음속에 회의가 생깁니다. 과거 견고한 성벽이 있었어도 이방 나라에 의해 공격을 받아 성벽도 무너지고 성전도 훼파되었는데 성벽이 없는 상태에서 성전만 짓는다고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 괜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벽이 되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치 창15:1절에서 두려움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하신 것과 같습니다.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연합군과 전쟁을 했습니다. 이들의 보복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방패가 되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누구도, 무엇도 하나님을 뚫고 아브라함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벽이 되어주실 때 예루살렘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안전한 곳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야만 가장 안전한 삶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견고한 성벽이 있는 요새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시자 아무리 견고한 예루살렘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실 때 가장 안전합니다. 시127: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10절)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은 열방을 심판하십니다. 6절 “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라고 하는데, 여기 북방 땅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를 가리킵니다. 그곳에서 도피하라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돌아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 북방 땅에서 나와 도피해야 하냐면? 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천사를 열방에 보내 심판하시므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을 범한 자들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은 “너희에게 손대는 자는 곧 주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아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열방을 심판하시는데, 어제 살펴본 두 번째 환상에서 네 뿔을 네 명의 대장장이가 등장해서 박살을 낸 것처럼 그렇게 열방을 심판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10절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함께 머무심이 가장 큰 복입니다. 그래서 11절에도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12절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머무시고, 소유 삼으시고, 택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11절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라는 말씀을 통해 원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나라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은혜와 복을 누리고 이를 통해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나라가 아닌 세상 나라가 되어 오히려 세상을 따라 살아간 것입니다. 그 결과가 멸망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회복을 통해 원래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을 이루게 하십니다. 많은 나라가 돌아오게 하십니다.
여기서 이 시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살펴봐야 합니다. 여전히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나 한 사람의 복과 평안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한 아름다운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13절입니다.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실을 바라보면서 입으로 말하던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소리를 닫고 잠잠하라고 하십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할 것이니 기대하라는 겁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십니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불로 둘러싼 성벽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눈동자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머무시고 소유 삼으시며 다시 회복하십니다. 일어나셔서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황무한 예루살렘을 영광의 도성으로 만드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황무한 인생을 영광의 인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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