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2:1-17절/어린 양의 피와 말씀으로(25.07.18)

2025.07.1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1절)

​오늘 본문은 마치 SF영화와 같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한가지 예를 설명하는 것이 본문을 비롯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저 사람 변사또와 같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 이해합니다. 추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러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 한 단어가 더 선명하게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런데 우리 문화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당신 변사또와 같다”라고 한다면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거기서 오해가 생깁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생소한 내용이지만 그 당시 문화 속에 살고 있던 성도들은 무슨 이야기인지를 어떤 말이나 글보다 선명하게 이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자와 아이 그리고 용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한다면 “용”입니다. 3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런데 9절은 용의 정체를 설명합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옛 뱀인 사탄이 여전히 온 세상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용이 해산하는 여인에게서 아이를 삼키려고 합니다. 용이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방해서 자신이 왕인 것 처럼 흉내내는 존재라는 겁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사탄은 꼭 하나님처럼 흉내내는 존재입니다. 이런 사탄이 제거하려는 아이는, 5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입니다. 승리하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여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1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고 합니다. 해와 달과 별로 표현되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것은 창37:9절에 나오는 요셉이 꾼 꿈을 반영합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열한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야곱의 가족을 통해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형성됩니다. 구약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이스라엘을 통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런 예수님을 제거하려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패합니다. 오히려 5절 하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용은 여자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합니다. 광야는 황량하고 위험한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있는 곳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교회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14절도 그렇습니다. 다시 광야로 도망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당시 성도들이 마주한 현실이 광야와 같습니다. 위험하고 막막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함께 하십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11절)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실패한 용은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미가엘과 사자들에 의해 패배합니다. 그래서 8절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9절 “큰 용이 내쫓기니” “내쫓겼다”입니다(9,10,13). 용이 하던 일이 온 천하를 꾀는 일을 하며, 10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용은 패배하였습니다. 내쫓겼습니다. 사탄도 자신의 패배를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최후의 발악을 합니다. 그 대상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13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해져있습니다. 사탄의 패배, 교회의 승리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요? 11절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합니다. 먼저 어린양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고 승리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를 붙잡을 때 우리도 승리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를 굳게 붙잡고 선포했습니다. 앞에서 재앙 가운데서도 10:11절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했고 11:3절 “두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때 전한 복음의 내용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승리입니다. 사탄의 참소와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승리입니다.

이를 위해 성도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합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가 목숨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이 땅을 살아가는 육신의 생명은 잃어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성도들이 세상의 공격과 유혹 앞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발견합니다. 교회의 모습을 해와 달과 별을 품고 있는 여인으로 표현합니다. 당시 교회는 세상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요? 초라하고 연약했습니다. 기울어져가고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교회와 성도들이 영광스런 공동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십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보여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사용하십니다. 교회와 성도가 바로 그런 영광스런 존재입니다.

지금 시대도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교회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교회가 영광스러운 공동체임을 말씀하시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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