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3절)
6장에서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가 여섯 번째 인까지 열렸습니다. 인이 열릴 때마다 전쟁과 기근이 일어납니다.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지니 전 우주적인 재난이 발생합니다(6:12-17). 이로 인해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 부자들과 강한 자들이 하나님의 분노가 두려워 차라리 산과 바위가 자신들에게 떨어지길 간구할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6:17절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묻습니다. 이 진노를 피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뿐만 아니라 보호를 받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말씀합니다.
1절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은 네 천사를 봅니다. 이들은 땅 네 모퉁이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네 천사는 바람을 붙잡고 있는데, 이 네 천사와 바람을 2절에서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라고 합니다. 즉 이들이 잡고 있는 바람을 놓으면 온 땅에 재난이 임하게 됩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다른 천사가 등장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3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을 치는 대상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 로마 황제를 주인으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주인으로 섬긴 자들입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요, 그렇다면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온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소유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감히 건들 수 없습니다. 성도의 신분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엡1: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믿는 성도는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인침을 받은 숫자가 144,000명입니다. 어떤 이단들은 이 숫자를 실제적인 숫자로 이해해서 이 숫자가 차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5-8절까지는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인침 받은 자가 12,000명으로 동일합니다. 실제 숫자라면 이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12지파의 내용이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보통은 장자인 르우벤이 가장 먼저 나오는데 유다 지파에 맨 앞에 나옵니다. 유다 지파를 통해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지파씩인데, 6절에 므낫세가 나오고 8절에는 에브라임이 아닌 요셉 지파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보통 레위 지파는 12지파에서 빠져 있는데 레위 지파가 들어가 있고 대신에 단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단 지파가 빠진 이유로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우상숭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두 곳에 세우는데 벧엘과 단입니다. 이렇게 단이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우상숭배를 배격하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인 침받은 자 144,000명은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144,000은 12×12×1000으로 되어 있는데, 앞에서 24장로에서 설명했듯 하나의 12는 구약의 12지파요 그 다음 12는 신약의 12사도를 상징하며 구원받은 성도들의 상징입니다. 여기에 충만한 숫자인 1000을 곱해서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성도들의 숫자를 상징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15절)
그래서 이어지는 9절에는 144,000을 새롭게 표현하는데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이들이 흰 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서서 찬양합니다. 흰 옷과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이들의 찬양이 너무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만큼 은혜와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4장과 5장에서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에 대한 감격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본문에서 찬양합니다. 하나님 앞과 예수님 앞에서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바로 찬양과 경배입니다. 12절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때 장로 중 하나가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인침을 받고 이렇게 영광 가운데 찬양할 수 있는가? 14절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환난에서 나왔다는 것은 환난을 겪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깨끗하게 되었고, 그런 신앙을 환난을 겪음으로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입술로만의 믿음이 아닌 고난의 삶으로 믿음을 확증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15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라고 합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위해 과거 성막에 거하셨던 것처럼, 보좌에 앉으신 영광의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다시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으며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17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믿음을 지키다 고난의 눈물을 흘리지만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혹 순교의 길을 갈지라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말씀이 당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와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존재입니다. 고난과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성도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합시다. 하나님께서 인치셔서 소유 삼으신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장막을 치시고 영광의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자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께 찬양과 경배로 영광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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