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4:1-11절/보좌 위에 앉으신 이(25.07.08)

2025.07.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1절)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면서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한 내용이 아닌, 저자인 요한이 강조하는 부분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보석들의 이름도 나오고, 신비한 네 생물의 모습도 나옵니다. 하지만 본문의 강조점은 14번 반복되는 단어인 “보좌”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은 하늘에 있는 열린 문으로 올라오라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1:10절에 나왔던 주님의 음성입니다. 하늘에 열린문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시작은 창세기이고 마지막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은 하늘과 땅이 연결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면서 분리가 되었고 하늘 문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요한을 열린 문으로 올라오라고 하신 이유는 1절 하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입니다. 1:1절에서도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지금 요한과 성도들은 박해 속에 있습니다. 그 중심에 로마 황제가 있습니다. 황제의 자리에 앉아서 무서운 칼로 세상을 다스립니다. 이런 박해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마땅히 일어날 일들이 있습니다. 속히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이 있습니다. 핵심은 성도들의 승리입니다. 믿음의 승리입니다.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끝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열린 문을 통해 하늘로 올라간 요한이 본 것은 하늘 보좌에 그 위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3-11절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영광과 주변에 있는 존재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영광의 모습으로 앉아서 온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이 땅에서 잠깐의 권세와 인간의 능력으로 황제의 자리에 앉아있는 통치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능력으로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로마 황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낱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잠깐 있다 사라질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두려워할 분은 눈에 보이는 로마 황제가 아닌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관점이 바로 “하늘 관점”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10절)

​하나님은 어떤 모습이십니까? 3절에 보석의 종류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 영광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겁니다. 계시록을 묵상하다보면 요한은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기에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높으심을 표현하기에 인간의 언어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같고…같다”라고 합니다. 무지개가 보좌에 둘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무지개 언약을 생각나게 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보좌 주변에 24개의 보좌가 있고 24장로가 흰 옷을 입고 그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4, 7, 12, 24 등의 숫자가 반복됩니다. 여기도 24가 나오는데 12+12가 24입니다.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상징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보좌 주변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이 금관은 2:10절을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에 비춰보면 죽도록 충성하며 믿음을 지킴으로 얻은 관입니다.

6-7절에는 네 생물이 나오는데 특징은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고 합니다. 8절도 다시 강조합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같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셋째 생물은 사람, 넷째 생물은 독수리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각 피조물들의 대표를 말합니다. 동물은 사자, 가축은 송아지, 최고의 피조물인 사람, 그리고 새들의 대표가 독수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절에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합니다. 많은 눈들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감찰하시고 보살피심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부분은 8-11절입니다.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이 무엇을 하는가? 8절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이렇게 생물들이 쉬지 않고 찬양하는 하나님을 본문은 두 번이나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라고 합니다(9,10).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대단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지만 잠깐 있다 사라질 황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네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자 이번에는 24장로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쓰고 있던 금관을 벗어 드립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금관은 죽도록 충성한 결과로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쓰고 자랑해야 할 것 같은데 벗어서 드립니다. 영광의 하나님 앞에 그것을 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다운 곳을 가면 자동적으로 감탄사가 나오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아름다움 앞에 네 생물도 24장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누가 강요해서 경배하는 것이 아닌 자동적으로 엎드립니다. 금관을 벗어 드립니다. 이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성도는 11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라고 확신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땅의 관점으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하늘의 관점으로 살아갑니까?”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심을 확신하며 살아갑시다. 또한 이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바른 반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의 예배가 형식적, 습관적인 예배가 아닌 영광의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벗어 드리며 하나님만 높이는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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