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13-25절/유월절에 성전에서(26.02.05)

2026.02.5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15절)

​예수님은 갈리리 가나에서 첫 표적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의미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당시 이스라엘 종교였습니다. 의미와 생명은 사라지고 습관과 형식만 남아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이 보여줍니다. 가나 혼인잔치 기적을 행하신 진정한 의미가 이것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즈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우리는 1장에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1: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어린양이 유월절 어린양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일이 한번 기록되었지만, 요한복음에는 세 번 올라가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신 예수님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14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성전 안”이라고 했는데 건물 안이 아니라 이방인의 뜰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은 성전 경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뜰에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곳이 장사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성전이 이런 모습으로 변질되었는가? 성전에 올 때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전에 드리는 제물의 기준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레22:20-22). 제사장이 판단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상인들과 결탁해서 상인들이 파는 제물만을 흠이 없는 제물로 인정을 해준 겁니다. 그리고 상인들이 주는 이익을 챙깁니다. 그러니 제물을 사는 사람들은 상인들이 가격을 높여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한 번 성전세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유통되던 로마 화폐에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상이 없는 두로 화폐로 환전해서 성전세를 냅니다 그래서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할 성전이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성전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의 이익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과의 만남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가?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짐승들을 내쫓고 돈을 쏟고 상을 엎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16절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지금까지 누구도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종교권력자들의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도전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지만 타락한 성전의 모습에 분노하십니다.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와 반대로 행동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눈치 보고 사람 중심으로 행동합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런 주님의 열심이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할 것은 구약 다윗이 이야기를 통해 설명합니다(시69:9절).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예수님의 행동에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18절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는지 표적으로 입증하라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주실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19절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십니다. 아마 듣는 모든 사람이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합니다. 20절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성전은 헤롯 성전입니다. 오래 전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지었던 스룹바벨 성전을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증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도 46년 동안 진행 중이었고, 약 80년 만에 완공이 됩니다. 그런 성전을 3일 만에 일으킨다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아마 함께 있던 제자들 역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 요한은 21-22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깨달은 것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고, 참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성전을 헐라),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임을 깨달은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요 앞부분인 가나 혼인 잔치 기적을 행하신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십니다. 구약시대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므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완전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나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완전한 제물이 되셔서 단 한 번의 십자가의 죽으심(제사)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이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참성전이 되시고, 성전되신 예수님이 믿는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우리 또한 거룩한 성전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에게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24절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인기를 구하시지 않았다는 겁니다. 2:4절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때, 목적 즉 십자가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만남과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한 신앙을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의 인기를 얻는 신앙이 아닌 오직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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