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38절)
예수님을 소개했던 세례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십니다. 그러자 36절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합니다. 어제 본문 29절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세례요한은 인생의 문제가 ‘죄’라는 사실, 그리고 이 죄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당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왜곡된 기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의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안드레라고 40절이 소개합니다. 다른 한 제자의 이름을 성경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일 것이라고 합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정확한 설명은 세례요한이 자신의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낸 겁니다. 이제 따르고 섬겨야 할 분은 예수님이라는 거지요.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삶을 삽니다.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38절 “무엇을 구하느냐” 바꿔 이야기하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무엇을 원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이들은 예수님을 랍비, 즉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어디 계신지를 묻습니다. 그곳에 함께 머물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따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함이 이 제자들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39절 “와서 보라”고 대답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이 말이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46절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와서 보라”고 합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 계신 곳으로 가서 함께 거합니다. 시간이 10시쯤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시간으로 오후 4시입니다. 아마 하루를 함께 보내고 이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이후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가 변화된 모습을 보면, 예수님과 교제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듯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수님이 지금까지 이들이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안드레가 찾아간 사람은 형제인 시몬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41절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안드레의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 달라졌습니다. 랍비(선생님)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메시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곧바로 자기 형제 시몬에게 전한다는 것은 먼저 안드레의 마음에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그런 기쁨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 가운데 시몬이 생각났다는 것은 시몬 역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드레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몬을 알아보시고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그런데 본문 47절부터 보면 나다나엘이라는 사람도 예수님께 오는데 그 역시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알아보십니다. 무엇을 말하냐면?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정확하게 아신다는 겁니다. 아실 뿐만 아니라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게바’입니다. 헬라식으로 하면 ‘베드로’인데, 의미가 ‘반석’입니다. 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그는 처음에 반석이 아닙니다. 좌충우돌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가면 반석이됩니다. 초대교회의 중심인물이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시고 그렇게 만들어가십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베드로보다 훨씬 더 연약하고 부족함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 나라 향한 꿈도 주시고 이루게하시는 분이십니다.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46절)
다음 날에는 예수님께서 빌립이라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두 제자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따랐다면, 빌립은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제자를 삼으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 역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을 찾아갑니다.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는 나다나엘에게,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합니다. 나다나엘의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46절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이 말은 구약을 잘 알고 있는 나다나엘이 메시야와 나사렛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러자 빌립이 46절 “와서 보라”고 합니다. 빌립이 지혜롭습니다. 나다나엘과 논쟁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합니다. 우리도 전도하다 보면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요즘같은 시대 교회를 공격하고 자신의 지식으로 논쟁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과 빌립처럼 “와서 보라”, “와서 말씀 들어봐라”, “와서 예배드려보라”고 초대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빌립의 전도로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오자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아십니다. 47절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놀란 나다나엘이 자신을 어떻게 아시느냐고 묻자 48절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말씀에 나다나엘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49절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즉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맞습니다”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고만 했는데 나다나엘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아마 그 아래에서 나다나엘이 간절히 메시야를 고대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 그가 메시야를 만났고 자신이 기도했던 것을 아시는 것을 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놀라는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은 50절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더 큰 일”이 51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창세기에서 야곱이 한 곳에서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사닥다리가 보이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의미가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하늘과 땅,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사역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된 관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연결하시고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매일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됩시다. 또한 주님을 만난 기쁨을 “와서 보라”고 전하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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