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1:1-21절/말씀하신 대로(26.01.30)

2026.01.3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2절)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태어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약속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1절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를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돌보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십 평생 자녀가 없었던 사라를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행하시니 임신을 합니다. 그리고 2절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시기, 하나님의 때가 되니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1-2절의 강조점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시기에 반드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부분에서 실패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가 아닌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시기가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 본문처럼 가정에 갈등과 아픔이 발생합니다.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방법과 우리의 때를 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입니다.

낳은 아들 이름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이삭’이라고 짓습니다.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이삭이 태어난 후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합니다. 4절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여기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입니다.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민족과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시면서, 아브라함도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도록 언약 백성의 징표로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할례를 통해서 언약에 신실한 삶을 스스로 결단하며, 이삭의 몸에도 징표를 새기고 있습니다.

5절은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를 기록합니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100세입니다. 뿐만 아니라 2절은 “노년의 아브라함”, 7절도 “아브라함의 노경에”가 반복됩니다. 무엇을 말하냐면? 인간이 끝났다고 절망하고 포기할 때 하나님은 시작하시고 소망을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끝났다고 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슬픔 가운데 있던 사라를 웃게하셨습니다. 또한 이 소식을 듣는 모든 사람도 웃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쓴웃음이 변하여 함박웃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시30:11절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우리도 삶을 살아가다 보면 절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는 때입니다. 다시 웃게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12절)

​이삭의 태어남은 기쁨이지만 하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아브라함의 뒤를 이을 것인가입니다. 지금까지는 당연히 이스마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태어남으로 변화가 생깁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삭이 젖을 떼고 잔치를 베푸는 날에 일어납니다. 보통 젖을 떼는 나이는 세 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이스라엘의 나이는 17살 정도 되었습니다. 상당히 장성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소망이요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닙니다. 갈등이 발생하는데 9절 하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여기 “놀리는지라”의 본 의미는 “웃었다”입니다. 비웃은 겁니다. 아이가 비웃은 것을 가지고 가족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내쫓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좀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이 비웃음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가는 것에 대한 비웃음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거대한 세상을 만들고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조롱하며 비웃습니다. 그러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사라는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합니다. 11절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사랑하는 아들, 지금까지 큰 기쁨이었던 아들은 쫓아낸다는 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12절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맡기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라의 말처럼 내 보라고 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맺은 언약이기에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이삭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의도적으로 하갈의 아들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거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14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순종하기 쉽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순종합니다.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의 모습 가운데 이런 내용이 많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면 머뭇거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따릅니다.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주고 하갈과 아들을 내보냅니다. 이들은 머지않아 죽을 위기를 만납니다. 그런데 17절에는 두 번이나 하나님께서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들으셨다”인데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갈을 위로하시며 아들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갈의 눈을 밝히니 샘이 보이고 물을 가져다가 아들에게 마시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도 함께 하십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때에 이루실 것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인내합시다. 하나님께서 말씀 통해 순종을 요구하실 때 즉각 순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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