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6절)
2:25절은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 어떤 허물이나 장벽이 없는 하나 됨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하나 된 관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3장으로 오면 모든 관계가 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짐승이 ‘뱀’입니다.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여기 ‘간교한’은 ‘지혜롭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지혜를 사탄이 사용하니 간교함이 됩니다. 간교함으로 사람을 유혹합니다. 뱀은 먼저 여자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는 인간의 타락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절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도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는 임으로 먹되 단 하나 선악과만을 금하셨습니다(2:16). 그런데 하나 금하신 것을 전부 금하신 것으로 질문을 던져 하나님에 선의에 대해 의심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신뢰에 균열이 생기도록 합니다. 이처럼 사탄은 사람의 약점을 잘 알고, 또한 사탄의 공격은 작은 틈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뱀의 질문에 여자가 대답하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답입니다. 3절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의 명령은 2: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였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만지지 말라”는 말을 포함시키고, “반드시 죽으리라”를 “죽을까 하노라”로 바꿉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알지 못했고, 알았더라도 견고하게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아담이 아닌 하와를 먼저 공격했는지 모릅니다. 성경 흐름으로는 선악과 명령은 하와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담에게 주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와의 마음에 균열이 생긴 것을 확인하자 사탄은 직접적으로 공격합니다. 4절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오히려 5절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선악과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처럼 다스리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임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이 되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알면서도 금지시키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람을 속이는 옹졸한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여인이 넘어갑니다. 그러자 선악과가 이전에 보던 것과 달리 보입니다. 이전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과일이었다면 이제는 6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입니다. 눈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따먹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먹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입니다. 그렇다면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을 때 아담도 같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담도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선악과를 주자 받아 먹습니다.
그 결과가 7절인데요,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사탄의 말처럼 눈이 밝아지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끼고 맙니다. 이렇게 인간의 타락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9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사실을 아십니다. 그렇다면 이미 경고하신대로 징계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먼저 범죄한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그러자 아담과 하와의 반응이 8절 하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전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기다렸습니다. 만남이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습니다. 그래서 숨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이런 아담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9절 “네가 어디 있느냐” 몰라서 찾으시는 것이 아닌,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육체가 어디있느냐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상태냐고 묻고 계십니다. 아담 영혼의 현주소를 묻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담은 육체에 대한 이야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 때문에 두려워서 숨었다는 겁니다. 자신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 때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처럼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보다 핑계하고 탓하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까지도 탓합니다. 12절에서도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에게 핑계하면서 하와를 하나님께서 주신 여자라고 합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된데는 하나님 탓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핑계하고 합리화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탓합니다. 그러면서 죄인을 찾아오셔서 손을 내미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여전히 우리도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13절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의 물음에 뱀을 핑계합니다.
첫 번째 아담은 이처럼 사탄의 유혹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가 들어왔습니다. 사탄은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고 승리하셨습니다. 마4:10절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만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올 한해 말씀 붙잡고 승리합시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