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1-16절/다시 생각하고 싸우라(25.12.19)

2025.12.1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절)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유다는 자신을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라고 소개합니다. 육신적인 관계보다 예수님과의 영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을 ‘종’으로 소개합니다. 유다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은 “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아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시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의미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특별한 선택을 받은 것이요, 예수님께서 항상 동행하시고 지켜주시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미 주신 큰 은혜를 늘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3절부터는 편지를 보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성도들에게 편지 쓰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은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3절 하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성도가 집중해서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구원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 신분이 되었으며, 그런 신분을 가진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이것은 힘써 싸워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표현을 보면 당시 상황이 매우 위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런 문제를 일으켰는가? 4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고 하는데, 조용히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들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심판을 받기로 작정된 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도리어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을 부인하는 악한 모습입니다.

이런 거짓을 분별하고 싸우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는 심각한 혼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5절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고 합니다. 사실 유다가 편지로 기록한 내용은 이미 사도들과 지도자들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도들이 희미해지면서 분별하지 못하고 동화되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나게”하려고 편지를 씁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내가 받은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기준을 선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매일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받을 심판은 출애굽한 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받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 흑암에 갇히는 것과 같을 것이며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같을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11절)

​그렇다면 거짓 교사들이 문제는 무엇일까요? 8절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여기 “꿈꾸는 사람”이 나옵니다. 아마 꿈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말씀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며 음란과 정욕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권위를 무시합니다. 교회와 지도자의 권면을 듣지 않습니다. 영광을 비방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사들을 비방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10절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비방하고 악한 본능을 따라 행동합니다. 결과는 멸망입니다.

이어서 구체적으로 거짓 교사들의 실상을 열거합니다. 이들은 구약에 나오는 가인과 발람, 그리고 고라와 같습니다. 가인은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시기심으로 동생을 죽인 자입니다. 발람은 돈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 했던 거짓 선지자입니다. 고라는 당을 지어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다 죽은 자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6가지로 설명하는데 첫째는 12절 “애찬에 암초”입니다. 애찬은 성도들이 함께 식사 교제를 하며 하나됨을 확인하는 시간인데 이들은 하나됨을 깨뜨립니다. 끼리끼리 모이고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일들을 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입니다. 지도자인데 양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양들을 이용해서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입니다. 구름이 떠오르면 비를 기대하는데 이들은 겉모습은 그럴듯한데 진리가 없습니다.

네 번째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입니다. 겉모습은 그럴듯한데 뿌리가 뽑혀 죽어있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니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다섯 번째는 13절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입니다. 거품을 뿜는 바다처럼 가식과 허풍이 많습니다. 거친 물결처럼 거칠게 말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입니다. 결국은 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다가 소멸해버리는 존재입니다.

거짓 교사들과 관련된 본문을 살펴보니 이것이 당시 거짓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많은 교회 안에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진 것입니다. 세상 정신과 동화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힘써 싸워야 합니다.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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