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9:13-24절/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25.12.10)

2025.12.1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13절)

​1-12절에서 모든 것을 아시고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한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셨음을 선포합니다. 왜 갑자기 시인은 자신의 창조를 묵상하며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요? 19절을 보면 악인들이 시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대적들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두렵고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잊고 문제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때 찾아오는 것이 낙심과 절망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기도하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합니다. 사람들이 평가하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드셨는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시인으로 하여금 가장 중요한 문제인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발견하게 하였습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는 겁니다.

13절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인체의 장기는 약80여 개라고 합니다. 크고 작은 장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만드셨습니다. 여기 “만드셨나이다”의 의미는 베틀로 옷감을 짜듯 섬세한 과정으로 만드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우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쩌다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 땅에 존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인 나를 그렇게 만드셨다는 사실이 감동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14절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고 합니다. 이전 성경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신비입니다. 그래서 “심히 기묘하다”라고 말하고 “기이하다”는 표현도 2번 반복됩니다(14,15). 15절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하나님은 은밀한 곳이며 땅의 깊은 곳과 같은 어머니의 태에서 시인을 만드셨습니다. 어둠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집니다. 마치 12절에서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어둠인 것 같은데, 그곳에 생명이 있고 빛이 있습니다. 이 깨달음이 시인에게도 한 줄기 소망의 빛으로 다가옵니다. 시인의 현실이 칠흑과 같은 어둠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날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계획과 섭리 속에서 시인을 만드셨기에 다시 강조하는 것은 “아신다”는 겁니다. 16절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하나님 앞에 숨겨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어렵습니다. 고대 근동의 배경으로 이해한다면 당시 왕들이 태어날 때 신의 칙령이 담긴 운명의 토판을 목에 걸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인의 앞 날에 대한 모든 것을 예정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삶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명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24절)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시고, 앞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며 깨달을수록 기가 막힙니다. 시인의 마음이 습3:17절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래서 시인은 18절 하 “내가 깰 때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이런 고백입니다. 악인들로 인해서 괴롭고 불면의 밤을 보냅니다. 혼자인듯한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런데 나를 심히 기묘하게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이제 시인을 악인들에 대해서 기도합니다. 19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과격한 기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토로하며 온전히 맡기는 기도입니다. 어쩌면 시인이 악인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는 자신이 곧 죽을 것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니 자신을 악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둘러싸시고 함께 하십니다(5절).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하며 기도로 맡깁니다.

악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시인은 그렇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의 말과 행동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거룩한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미워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불명예를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과격한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의로운 분노가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 마음의 생각과 동기를 살펴보시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지 않습니다. 혹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잘못된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지 하나님께서 살피시고 깨닫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영원한 길로 인도해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의 기도 중 많은 부분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필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기도가 바로 존재에 대한 기도입니다. 시인처럼 나 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심히 기묘하심을 묵상하며 감사합니다. 특히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는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도 악인들과 문제들이 있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우리 마음과 생각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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