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2절)
본 시편은 ‘다윗의 시’로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이 환난 가운데서 지은 시편입니다. 시작은 1절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시인은 지금 감사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1절 “신들 앞에서”는 “천사들 앞에서”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이방신들 앞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지금 이방 신들이 다스리는 이방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도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라고 합니다. 성전 가까이에 있다면 성전에 가서 예배하며라고 해야 할 텐데, 그럴수가 없으니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야에 같은 환경,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시인은 “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찬양합니다. 예배합니다. 또한 간구합니다. 이것이 힘과 기쁨이 넘치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시인이 감사하는 이유는 2절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입니다. 시인은 시작인 2절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인 8절에서 다시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라고 합니다.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언약에 신실하심입니다. 말씀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현실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진 것과 같지만 시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배하며 찬양합니다.
그리고 간구합니다. 비록 이방 땅,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하나님은 아니계신 곳이 없고 자기 백성을 반드시 기억하시며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간구합니다. 시인의 간구에 하나님은 힘을 주십니다. 강하게 하십니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7절)
시인은 이어 4절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라고 합니다. 1절에서는 “신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면, 이제는 세상의 모든 왕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듣고 경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 왕에게 말씀하시고, 순종하지 않자 10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하나님의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세상 왕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해야 합니다. 그래서 5절은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그 무엇, 그 누구보다 하나님이 높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크고 위대하십니다.
시인의 고백이 놀라운 것은 당시 세상 왕들은 신과 같은 존재로 경배를 받습니다. 함부로 대적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확신하고 있는 것은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세상 모든 왕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할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영광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백성들이 영광스러운 존재요, 영광의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주목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된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당시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거대한 로마제국 황제의 핍박 아래 놓여있습니다. 황제 앞에 성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요한을 열린문을 통해 하늘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계4:1절). 그리고 보여주신 것이 보좌였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온 세상을 주관하시며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이 땅 로마제국의 황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한치의 두려움없이 믿음의 길을 걸어 가라고 하십니다. 비록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는 세상과 다릅니다. 6절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세상은 힘과 권력 부를 가진 자들이 중심입니다. 낮은 자들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삶이 피폐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높이 계시지만 낮은 자들, 연약한 자들을 아시고 살피십니다. 도우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반면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본문을 말해줍니다. 우리도 낮고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7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내가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 주시고, 손을 내미셔서, 내 원수들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시며, 주님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고난의 한복판을 걸어도 하나님께서 능력의 오른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눈물과 수고와 인내를 아시고 갚아주십니다. 8절 하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하는데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28:20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감사할 수 없는 현실, 예배할 수 없고 기도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시인은 전심으로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 기도의 삶을 삽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닮아 하나님 나라 정신을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겸손한 삶, 낮고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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