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9절)
에스라의 회개 기도가 계속됩니다. 9절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라고 하는데 노예가 된 이유는 7절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합당한 징벌이 따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롬6:23절).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이런 징계는 하나님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있어야만 새로운 회복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간도 70년이라는 시간을 정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대제국 왕들의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입니다.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움직이셨습니다.
왕들 앞에서 긍휼을 입어 고국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무너진 것을 수리하였습니다. 9절 하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울타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입니다. 마땅히 은혜에 감사하며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와 사랑받고도 계명을 저버렸습니다. 특히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되는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왔는데, 포로로 끌려간 원인이 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11절부터 설명합니다. 과거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입성하던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더러운 땅”이라고 정의하십니다. 11절에 세 번이나 ‘더러운’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러운 죄악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셨습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죄악은 땅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땅이 죄악된 백성들을 토해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가나안 백성들과 같은 죄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 땅이 토해 낼 것이라고, 그래서 이방에 포로로 끌려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리신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죄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 성장해서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백성들과 통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때 이스라엘은 왕성하며 풍성한 삶을 살게 되고, 영원히 약속의 땅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풍성함과 안정됨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오지 않습니다. 가나안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을 숭배함으로 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신6:10-15절).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9절)
그런데 안타깝게도 과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풍요를 위해 가나안 풍속을 따랐습니다. 그들과 동화되어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라는 멸망하고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셨습니다. 상당수의 백성들을 남겨두시고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에스라는 율법 학자입니다. 율법의 기준으로볼 때 범죄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이 진멸됨과 같이 진멸됨이 어쩌면 마땅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 사랑하셔서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셨습니다. 남겨두시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에스라가 생각하기에 기가 막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받고도 다시 계명을 거역하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과거의 죄악을 반복하니 이제는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래서 10절 하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5절 하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또한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구체적으로 죄악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고 회개하는 것이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이 시대를 회개가 사라진 시대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대신 회개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이 많아서 달라는 기도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풍성한 삶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회개는 말씀을 기준으로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며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과거 죄로 인해 죽었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벧전2: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죄의 종노릇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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