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2절)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7월에 모여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회복하고 절기를 지킵니다. 이어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드디어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1절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대적들이 듣습니다. 이 대적들은 현재 예루살렘과 주변에 사는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의 구체적인 정체에 대해 2절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라고 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했는데 앗수르의 포로 정책은 혼합정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 곳곳에 흩어져 살게 합니다. 또한 앗수르 백성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해서 살게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통혼하게 되고 혼합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순수성을 위해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후손이 신약시대 등장하는 ‘사마리아인들’입니다.
반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했지만 혼합되지는 않고 순수함을 이어왔습니다. 이처럼 앗수르 땅에서 이주하여 혼합된 백성들이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 거주하면서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귀환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자칫 기득권을 빼앗길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2절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고 합니다. 함께 성전 건축에 동참하겠다는 겁니다.
이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방 신을 섬기면서 하나님은 그중 한 신 정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 “너희 하나님을”이라고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들이 함께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한 이유는 성전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혹 지어진다 해도 자신들의 수고를 주장하며 여전히 기득권을 주장하려는 목적입니다.
스룹바벨을 비롯한 족장들은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절합니다. 3절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과거의 실패가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며, 그런 자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단호히 거절합니다. 거절하면 분명 방해가 있을 것을 알았지만 타협하지 않습니다. 지금 성전 건축은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불신앙의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지 아니면 이익과 편리를 위해 타협을 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어려움이 있고 홀로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길이지만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또한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믿음의 삶입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4절)
함께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제안이 거절 당하자 이들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4절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합니다.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비난하고 조롱하며 주변에 악한 소문을 퍼뜨리는 겁니다. 또한 5절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라고 합니다. 세상의 방법, 즉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불법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는 사람이었다는 이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같은 방식으로 상대하는 겁니다. 더 많은 뇌물을 주어 해결하는 겁니다. 더 악한 소문과 강한 비난으로 상대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돌아온 백성들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방해로 오랫동안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지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도 방해와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귀환한 백성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페르시아 땅에서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황량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감동과 뜻에 순종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 합니다.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쉽지 않은데 방해하는 세력, 장애물을 만납니다. 이로 인해 약 15년이나 성전 건축이 중단됩니다. 마음 속에 원망과 불평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혼란과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여정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방해와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성전 건축의 방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한참 뒤에 일어날 성전이 아닌 성벽 재건을 방해한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왕에게까지 상소를 올려 방해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과정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반대를 합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악한 세력들의 방해가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동일한 방법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을 통해 이 시대 영적 싸움을 보습을 봅니다. 여전히 강력한 사탄의 세력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비난과 조롱으로 약하게 하고, 장애물을 놓아 믿음의 길을 실족하게 합니다. 한번 승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더 큰 문제를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공격을 이겨내는 것이 신앙이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과정에 함께 하시고 승리케 하실 것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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