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32:1-23절/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25.10.24)

2025.10.24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7절)

​히스기야는 우상으로 물들어 무너져가던 나라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성전을 성결케 하고 예루살렘과 유다, 그리고 북이스라엘까지 우상의 제단을 제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섬기는 제도까지 완비하였습니다. 그런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형통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31:21절)

그런데 곧바로 위기를 만납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점령하려 합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한 상태이고 이제 남유다까지 위협합니다. 히스기야는 먼저 백성들과 의논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행동으로 옮깁니다. 가장 먼저 실행한 일은 3절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입니다. 물 근원을 막아서 앗수르 군대가 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야 포위공격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망대를 쌓습니다. 그동안 우상숭배의 결과 이방 나라들의 공격으로 많이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합니다. 밀로는 예루살렘 성의 바깥벽으로 방어벽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듭니다. 강대국 앗수르와의 싸움은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 어쩌면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입니다. 그럼에도 히스기야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백성들도 함께 동참합니다.

정비를 마친 히스기야는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합니다. 외적인 준비를 했다면 이제는 내적으로 무장합니다. 7-8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핵심은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해야 합니다. 외적으로 강해 보이는 대적들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 상황을 상상해보면 히스기야의 태도와 연설 속에 단호함과 확신이 있습니다. 연설을 듣는 백성들의 눈이 빛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무너졌던 하나님 신앙을 회복한 결과입니다. 히스기야가 신앙회복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위기 속에 남유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아마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주변 다른 나라를 의지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신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20절)

​본문은 히스기야의 연설이 끝나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연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9-19절까지 아주 길게 이어집니다. 여기에 반복되는 내용은 “모든 나라의 신들이 능히 그들의 땅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입니다(13,14,15,17). 한마디로 어떤 신도 산헤립의 손에서 그 나라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나라들이 산헤립의 공격 앞에 무너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히스기야의 말을 따르면 결국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산헤립은 12절에서 히스기야의 신앙개혁을 비난합니다. 그동안 섬기던 산당과 우상의 제단들을 헐어버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우상을 함께 숭배해야 잘되는데, 우상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서 생긴 문제라는 것이지요. 결론은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자신의 손에서 유다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롱을 유다 방언으로 소리질러 유다 백성들이 듣게 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 행동입니다.

역대기 저자는 왜 이렇게 길게 산헤립의 반복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역대기를 읽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주변 나라들에 의해서 느끼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크고 강력한 세상의 공격에서 보호해주실 수도, 구원해 주실 수도 없을 것만 같은 현실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대한 문제 앞에, 세상의 소리 앞에 무기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이때 기도 내용이 왕하19:14-1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이 기도에 하나님은 21절 “한 천사”를 보내 앗수르 진영을 완전히 멸하십니다. 많은 천사도 필요 없습니다. 한 천사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니 순식간입니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고백했던 것처럼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며,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패배한 산헤립은 부끄러워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21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자신의 신을 의지하며 교만하더니 자식들의 반역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긴 자들의 최후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유다를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23절 하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고 합니다. 31:21절에서 “형통”했던 히스기야가 이제는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됩니다. 작은 나라였던 남유다가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했을 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형통을 넘어 존귀함을 주시기 위해 이 모든 과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충성했는데 만나는 시련과 문제들은 우리에게 형통을 넘어 존귀함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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