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29:20-36절/즐거움의 찬송과 예배(25.10.20)

2025.10.2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21절)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닫혔던 성전 문을 열고 우상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성결하게 하였습니다. 그 일이 마무리되자 이제는 성결케 된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또한 25절부터는 악기를 불고 찬양합니다. 즉 히스기야는 성전을 청소하고 성결하게 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전을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으로 가득 채웁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전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우상이나 더러운 것들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안 되고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으로, 말씀과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가장 먼저 드린 제사는 속죄제입니다. 수송아지와 숫양, 어린 양과 숫 염소 각 일곱 마리씩 끌어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해 속죄 제물로 삼아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바로 ‘죄’입니다.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이 일을 21절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합니다. 웃시야 왕처럼 자신이 주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이들은 제물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죄로 오염되어 있는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숫염소는 왕과 회중 앞으로 끌고 와 안수합니다. 자신들의 죄를 숫염소에게 전가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죄를 짊어진 숫염소가 제물되어 희생됨으로 백성들의 죄가 사해집니다.

우리가 누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 죄의 짐을 우리 각자가 지고 징벌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로 인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생명과 자유를 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가장 귀한 복,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고, 살 수 없는 복은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어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을 성전에 두고 악기를 연주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25절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진행합니다. 25절 하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시고, 선지자들이 다윗에게 명령해서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한 찬양단이 조직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앞선다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35절 하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고 합니다. 열정이 클수록, 받은 은혜와 감격이 넘칠수록 말씀을 기준으로, 질서에 따라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다시 조직된 악기 연주자와 찬양하는 자들이 하나되어 찬양합니다. 이것이 27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해서 28절 “번제를 마치기까지” 계속됩니다. 이 광경을 상상해보면 닫혔던 성전 문이 열리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됩니다. 그 가운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은혜와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9절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제사는 마쳤지만 하나님을 엎드려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30절은 “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고 합니다.

이 예배의 은혜와 감격이 이 시대에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성전을 예배와 찬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찬양도 전심으로 올려드려야 합니다. 이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31절)

​히스기야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백성들에게 31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고 합니다. 감사제물을 드리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통해 회복의 은혜를 받았다면 받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드리라는 겁니다. 그랬더니 백성들 가운데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자원해서 제물을 가져옵니다. 가져온 제물은 번제물과 화목제물인데요, 번제물보다 화목제물의 숫자가 많습니다. 33절 “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 마리요 양이 삼천 마리라” 이는 백성들의 감사가 넘쳤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많은 제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합니다.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기는 제사장이 부족합니다. 예배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자칫 기쁨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들이 나서서 부족한 부분을 채웁니다. 또한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기 기다려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34절 하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역대기 저자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레위인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포로에서 돌아온 역대기 독자들에게도 레위인들이 중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들이 예배를 회복하는 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하는 일을 해야 하기에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레위인들이 사명을 잘 감당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이스라엘 신앙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이들은 큰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지적하거나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고 부족함을 채워주고 기다려주는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많은 공동체가 작은 문제가 큰 문제로 이어져 어려움을 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입니다. 부족을 채우며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36절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모두가 기쁨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성결하게 하고 다른 헛된 것으로 채우지 말고 예배와 찬양,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풍성히 채워야 하겠습니다. 또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은혜에 반응해서 기쁨과 자원함으로 드리는 삶이 더 복된 삶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며, 몸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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