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2:1-16절/하나님을 기쁘시게(25.09.02)

2025.09.2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3절)

​바울은 짧은 기간(세 안식일)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일행을 공격하려는 유대인들 때문에 더 머물 수가 없어 밤중에 베뢰아로 이동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들이 어떻게 데살로니가로 들어가서 어떠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해를 부탁하는 내용이면서 또한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앞으로 복음을 맡은 자로서 어떤 마음과 태도로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순회전도자로서 방문해야 할 곳이 많은데 데살로니가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과 사랑, 소망의 삶을 살아갑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외면을 받지만 새 생명을 얻어 소망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바울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과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연이 아니오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 우리가 경험한 사건들로 예수님을 만나고 새 소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오기 전 빌립보에서 만났던 고난과 능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주어 고발을 당하고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아는 찬송과 기도 가운데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고 간수의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빌립보 사역 이후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였습니다.

바울은 3절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5절도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결코 간사함이나 부정, 속임수, 아첨, 탐심으로 성도들을 대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시 순회전도자들이 있었는데 잘못된 목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서 속이고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전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과 다릅니다.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4절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바울을 선택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맡기셨습니다. 핍박자였던 바울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와 만나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이 아니라면 자신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반복되는 말이 4절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4절 하 “하나님을 기쁘시게”, 5절 하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10절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라고 합니다. 즉 바울은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사역이었습니다. ‘Coram Deo’의 삶입니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13절)

​그러기에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7절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11절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습니다. 즉 부모의 심정으로 성도들을 돌보고 양육했습니다. 그랬기에 8절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성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위해 생명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고 그 사랑으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런 설명을 길게 하는 이유는 12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본을 통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즉 바울은 말이 아닌 삶으로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13절입니다. 본문의 다른 구절은 잘 몰라도 13절은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이 구절이 본문의 흐름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짧은 기간 복음을 전했지만 좋은 교회, 소문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1:6절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였습니다. 말씀을 받고 본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관계를 통해 전달됩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신뢰하고 수고를 존중할 때 말씀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고, 본을 받게 됩니다.

즉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은 사역자들의 순수한 마음과 복음의 열정을 성도들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그 말씀의 풍성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어떤 마음과 태도이어야 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풍성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이 관계가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고난에 대해 설명합니다. 신앙의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을 주는 사람들이 동족이라고 합니다. 같은 민족, 가까운 사람이 고난을 줍니다. 이때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흔들림없이 우리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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