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10절)
일곱 대접 재앙 이후 17장부터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내용입니다. 큰 성 바벨론은 무엇을 추구했으며 그 결과 어떤 심판이 임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17장에서는 바벨론을 “큰 음녀”로 표현했고, 18장에서는 성도들은 거기서 나와 바벨론의 죄에 참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바벨론의 멸망으로 바벨론을 따르던 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세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9-10절은 땅의 왕들, 11-16절은 땅의 상인들, 그리고 17-19절은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먼저 땅의 왕들은 바벨론과 음행하고 사치했습니다. 세상 정신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10절에는 바벨론을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라고 표현합니다. “견고한”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들어가 있는데 땅의 왕들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절대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의 진노로 불에 타 연기가 올라옵니다. 그것을 보고 자신들에게도 재앙이 올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견고한 큰 성 바벨론은 10절 하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고 합니다. 본문에 반복되는 말들이 많은데, 가장 중요한 말은 10절과 17절, 19절에 반복되는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입니다. 사람들이 견고하다고 생각한 바벨론이 한 시간 만에 망해버린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겉보기만 크고 화려했지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전3:12-15절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렇습니다. 불 타 없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17절)
땅의 상인들도 바벨론을 위해 울고 애통합니다. 그런데 이유가, 바벨론의 심판을 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함이 아닌 더 이상 매매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치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들의 관심은 땅이 전부입니다. 12-13절은 상인들이 매매했던 품목들을 상당히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 은과 보석은 물론이고 고급 옷감과 그릇들입니다. 특히 주목을 끄는 품목은 13절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입니다. 사치와 치부는 새롭고 고급스러운 부분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관심을 끝이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들의 치부로 인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겁니다. 이들이 매매하는 것들 중에는 “종들과 사람들의 영혼들”까지 있습니다. 새번역은 “노예와 사람의 목숨”으로 번역했습니다. 사람을 노예로 사고 파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목숨도 돈으로 거래하는 무자비한 세상입니다. 한마디로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사람들이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14절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라고 하는데 입으로 맛보는 맛있는 과일이나 음식, 그리고 눈으로 보는 빛난 것들입니다. 꼭 우리 시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먹방 시대입니다.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또한 눈으로 보는 것에 집중합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시대 정신이 반영되어 있고 그것을 주도하는 것이 큰 성 바벨론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잘 분별해야 합니다. 롬12:2절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지막으로는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이들 역시 울며 애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땅이 아닌 하늘에, 그리고 순간이 아닌 영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은 사치와 치부에 관심이 있지만 성도는 영적인 부요함을 누려야 합니다. 3장에서 주님은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부요해서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하는 자들을 향해 계3:17절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영원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견고한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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