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1절)
23:5절에서는 레위인들을 계수하면서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4,000명의 찬양하는 사람들을 조직합니다. 이처럼 역대상을 보면 찬양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합니다. 15장에서 언약궤를 운반하고 안치하는 과정에서도 헤만과 아삽 등 노래하는 자들을 세워 찬양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성막 시대를 지나 성전 시대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조직 중 하나로 레위인 중심의 찬양대를 세웁니다. 그 내용을 25장 한 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조직은 다윗 임의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찬양대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대상17:7절을 보면 “또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 떼를 따라다니던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양을 치던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고 미약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거주할 땅을 주시며 다윗을 통해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고백과 찬양을 기뻐 받으시고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 은혜에 감격해서 다윗과 같은 찬양과 감사가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찬양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역대기 저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회복되고 살아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 나라의 회복과 부강을 기대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찬양과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때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또한 앞으로 베푸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목소리를 모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아삽의 지휘 아래 왕의 명령을 따라”(2절)
다윗은 1절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불렀던 노래가 “신령한 노래”라고 반복됩니다(1,2,3). 그런데 “신령한 노래”의 원어는 “예언을 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찬양대가 부른 노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노래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5절은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라”고 합니다. 찬양하는 자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찬양이 말씀과 별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곡조에 담아 함께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실제로 아삽(시50, 73-83)과 헤만(시88), 여두둔(시39,62,89)의 찬양 내용이 시편에 담겨 있습니다. 시73편 아삽의 시를 예로 들어본다면, 자신의 신앙 경험을 시에 담았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실족할 뻔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악인의 결과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73: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이런 찬양을 만들어 함께 부를 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또 하나 반복되는 말이 “지휘 아래”입니다(2,3,6). 2절 “왕의 명령을 따라”, 6절 “왕의 지휘 아래”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찬양대가 왕의 직속 기관으로 왕의 명령과 지휘 아래 직무를 감당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가문 대표의 지휘 아래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합니다. 찬양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목소리가 좋고, 악기 연주를 잘 한다고 나만 튀면 안 됩니다. 때론 절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휘를 잘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구성원들이 있어도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족하여도 지휘자의 지도 아래 하나가 될 때 아름다운 목소리를 냅니다.
또한 이들은 7절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8-31절까지 288명이 어떻게 조직되어 직무를 감당했는지 이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배우고, 연습을 반복하여 찬양합니다. 이런 찬양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함께 듣는 백성들에게 큰 은혜와 울림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8절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다같이 제비 뽑아 직임을 얻었으니”라고 합니다. 레위인들에게 직무를 맡기는데 이런 내용이 반복됩니다. 24:31절도 그랬습니다. “제비 뽑혔으니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더라”고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가문이 중요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 간격이 컸지만 하나님 앞에서 일을 감당할 때나 찬양할 때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비뽑아 감당했습니다.
이 시대 적용할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의 찬양은 어떻습니까? 모르는 찬양이라고 외면하지 않습니까? 배우고 익숙하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 유튜브 등이 잘되어 있어 검색만 하면 배울 수 있습니다. 마음과 열심의 문제입니다. 또한 아는 찬양이라도 전심으로 찬양하는지요? 마음을 다해 큰 목소리로 찬양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소리들이 어우러질 때 서로에게 감동이 있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루가 됩시다.

우리가 구구단을 외우거나 잊지않고 기억하기위해 곡을 붙여외우는것 처럼(아른다운 이땅에 금수강산에..고구려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
찬양은 하나님 베푸신 은혜를 잊지않고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은혜를 기억하며 앞으로도 은혜베푸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