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2절)
역대상 17장은 하나님과 다윗의 맺은 언약이고, 18장은 하나님께서 언약 맺은 다윗을 어떻게 강하게 하시는지로 이어집니다. 다윗이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을 종으로 삼고 조공을 바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윗과 이스라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주변 나라들에는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다윗도 여느 정복자들처럼 자신의 야망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19장은 왜 다윗이 전쟁을 하게 되는지 이유를 알게 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 상대 나라에서 전쟁의 빌미를 줍니다. 그들이 전쟁을 시작합니다.
먼저 암몬 자손과의 전쟁입니다.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 나하스가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다윗의 사울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런 호의를 경험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한 다윗은 나하스의 장례식에 조문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런데 암몬의 신하들이 왕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절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다윗의 순수한 호의를 의심의 눈으로 보라 봅니다. 이 땅을 염탐하고 정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다윗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니 위협을 느끼고 피해의식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 한 나라를 대표해서 조문 온 사람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문제지만, 왕인 하눈은 신하들의 말을 믿고 조문단을 잡아 수염을 깎고 옷을 수치스럽게 잘라버립니다.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다윗이 듣습니다. 5절 하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8:14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라고 했는데 그런 모습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13절)
암몬 자손들은 이 사건으로 다윗과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을 직감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은 천달란트를 아람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받습니다. 7절 “곧 병거 삼만 이천 대”라고 합니다. 18:4절 보면 다윗이 소바왕 하닷에셀을 치고 얻은 전리품이 “다윗이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라고 합니다. 병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병과 보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병거 천 대도 작지 않은데, 병거가 “삼만 이천 대”라고 하니 규모가 엄청납니다. 거기다 분명 더 많은 숫자의 기병과 보병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도 작전을 짜서 암몬은 성 앞에 진을 치고 아람 군대는 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 용맹을 떨친 다윗의 장수가 있으니 요압입니다.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지혜로운 작전을 세웁니다. 숫자적으로 불리하니 전면전을 피합니다. 대신에 10절 “이스라엘에서 뽑은 자 중에서 또 뽑아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을 치고” 최고의 정예 용사를 선발합니다. 기습작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생 아비새와 협력하여 작전을 진행합니다. 요압이 행한 두 번째 일은 13절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성읍을 위한 싸움이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싸움이니 힘을 내자고 합니다. 군사작전만이 아니라 군사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킵니다. 그 결과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16-19절은 패배한 아람 군대가 다시 연합군을 형성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 전쟁도 다윗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람이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 싸웁니다. 결과 다윗이 승리합니다.
20:1-3절은 요압이 암몬을 격파한 내용입니다. 이미 암몬과 전쟁에서 이겼지만 완전히 정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왕이 전쟁에 나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요압이 나가고 20:1절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삼하11장을 보면 이때 밧세바와의 간음사건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이 내용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숨기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자는 다윗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승리 주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4-8절은 블레셋 거인들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장수들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20:4절 “십브개가 키가 큰 자의 아들 중에 십배를 쳐죽이매”, 5절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6-7절에서는 큰 키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있는 괴물같은 거인도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죽였습니다. 결론은 8절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고 합니다.
18-20장이 다윗의 전쟁과 승리에 관한 내용인데 시작이 블레셋이고(18:1), 마침 역시 블레셋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된 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대적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다윗이 해냈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인들의 이야기를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장수들이 용맹하게 거인들을 제거했습니다. 저자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고, 다윗의 장수들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요압의 고백처럼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힘을 내고 하루를 살아갑시다.

여호와께서 선을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요압과 아비새처럼 하나님께 맡기고 서로 동역할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수염이 없는것이 왜 부끄러운 일인지 궁금합니다~
당시에 수염은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니 수염이 깎인 것, 그것도 아무렇게나 깎은 것은 최고의 수치입니다.